[책] 나치·알카에다·IS까지… 세상은 점점 나빠지지만 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 잔혹함에 대하여 (애덤 모턴 지음, 돌배개 펴냄)


왼쪽부터 국제 재판에 소환된 나치 전범들, 알카에다의 9·11테러, IS의 콥트교도 참수 /사진제공=돌배개

'일상과 무관한 곳서 발생

악인은 다른 종류의 사람'… 악에 대한 고정관념 반박

비도덕적 상황에 대한 묵인 등 누구나 악행 저지를 수 있어

분노·증오·비난으론 해결 못해 진실 규명으로 악순환 끊어야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일상의 푸념처럼 누구나 '악(惡)'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악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폭파 테러 사건에 대해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악의 축' 운운하며 세계적인 이데올로기 전쟁을 시도했다. 그는 이라크·이란·북한 등을 테러지원국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악마 같은, 나치돌격대와 일제 침략군 등으로 이미지화했다. 아이러니는 이러한 '악의 축' 비유에서 이란이 선배라는 점이다. 1979년 11월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이란정부가 정당화하면서 미국을 '거대한 사탄'이자 '세계 악의 근원'으로 비난했던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악'으로 부르는 실정이다.

'잔혹함에 대하여-악에 대한 성찰'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검토를 시도한 책이다. 저자는 철학과 역사 연구에서 '악'이라는 관념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고 봤다. 이유는 단순하다. 악을 상상하는 일 자체가 악에 다가서고 악행자의 심리에 동조하는 끔찍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악에 대한 편견은 고착됐다. 악행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무관한 곳에서 벌어지고 악인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종류의 사람일 거라는 나름 편리한 생각이 자리 잡았다. "끔찍한 행동이나 잔혹한 상황을 접하면 그 배후에는 분명 끔찍한 인물들이 있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그들을 찾게 된다"는 식이다.

악과 악인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생각은 '악인'들도 한다. 이들 악인들은 피해자에 대한 행동을 '가치 없는 쓰레기나 열등한 존재 또는 위험할 만큼 이질적인 대상'에 대한 행동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자자는 악과 악인의 실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관념에 반대한다. 대신 '이해력' '평범성' '성찰성'이라는 세 범주로 악의 이론을 세워 나간다. '이해력'은 악한 행동에 대해 비난만 하고 혐오스러워하는 데서 벗어나 동기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평범성'은 악이라는 것은 특이한 공격성향이나 증오로만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비도덕적인 상황에 대한 묵인과 침묵, 이를 통한 동참으로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찰성'은 악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일은 누구든지 노출될 수 있는 악의 가능성으로부터 '도덕적 관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분노와 증오, 비난은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 저자가 이 책의 전반에서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규명이다. 어째서 악행이 저질러 질 수 있었는가, 그 악행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이해하면 그 악행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도록 대응할 수 있다. "악행을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힘으로써 과거의 악을 반성하고 미래에는 그 악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와 흑백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오늘날 안정을 되찾은 것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의 처지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어떻게 됐으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고 있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면 과거라는 트라우마는 결국 후손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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