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판결이나 정부의 행정지침은 통상임금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노사가 각자 한발씩 양보해 비용과 편익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합의해야 미래지향적인 해답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방하남(56·사진) 고용노동부 장관은 6월2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사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르는 통상임금을 비롯해 고령화 시대의 고용 패러다임, 시간제 일자리 등 노동계의 각종 현안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방 장관은 첨예한 노사 대립에 꼬여가는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해 "노사가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대화를 통해 한발씩 양보하는 사회적 합의 뿐" 이라고 강조했다. 방 장관은 "일부에서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하지만 통상임금은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각 사업장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판결은 해법이 될 수 없고 새로운 문제의 시작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방 장관은 통상임금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계의 역할과 도움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멍석을 깔아놓은 것일 뿐입니다. 노동계가 마음을 열고 들어오면 해답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데 참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닙니다. 노동계가 통상임금은 마치 언제든 은행에 청구하면 받아 챙길 수 있는 보증수표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해법 도출은 불가능합니다."
방 장관은 "통상임금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비용과 편익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를 합의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대화는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인 노사 간 대립과 불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우리 노사 관계의 역사를 불신의 연속으로 규정하며 노사 공히 심각한 대표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방 장관은 "전권을 가진 노조와 사측의 대표자가 합의하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표가 타협을 하면 내부 조직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며 "이것이 노사가 극단적인 단기 이익 투쟁에 골몰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방 장관이 인터뷰 내내 수차례 되풀이해 강조한 단어는 '미래지향적'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는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기 때문에 타협의 공간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것"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발씩 양보해 공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야 미래지향적인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는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이 살아야 결국 내 임금도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기업 역시 당장 아웃소싱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고용이 안정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노사관계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어 화제는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이 집약된 고용률 70% 로드맵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갔다. 방 장관은 한층 힘있는 어조로 "고용률 70% 로드맵의 핵심은 우리나라 근로 문화의 패러다임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남성ㆍ전일제 중심의 장시간 근로 문화와 짧은 근로 생애 시스템을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격하게 임금이 오르는 연공제 시스템에서 일하다 조기에 은퇴해 자영업자로 전락하는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는 오히려 많은 인력을 시장에서 내몰아 고용률을 갉아먹고 경제 성장의 발목을 붙잡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가오는 고령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노동 시장에 들어와 적은 시간이라도 오래 일하는 패러다임으로 근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20~30년만 일하고 은퇴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인간 수명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대에는 양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앞으로 10년이면 총인구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 사회가 옵니다. 이 노인들을 모두 복지로 부양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중ㆍ장년층을 일방적으로 사회의 보살핌을 받는 '분자'가 아닌 지속적으로 소득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고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분모'로 붙들어놓는 것입니다. 고용 없는 복지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방 장관이 노동연구원 시절 발표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근로생애와 은퇴 과정 연구 보고에 따르면 2010년 531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3~1964년 출생자) 노동력 규모는 2020년이면 375만명, 2030년에는 199만명으로 급속도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현장에서 노동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썰물은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 수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수명이 길지 않았던 시절에는 30년 정도 일을 하면 이후 노후는 일을 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지낼 수 있었지만 기대수명이 80세를 넘나드는 시대에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방 장관은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으로 '1.5명 가구경제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남성 가장 한 명이 가정 경제를 모두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라 1명은 풀타임제로 일하고 한 사람은 가정을 돌보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모델을 말한다.
"선진국은 1.5명 가구경제 모델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다양한 고용 형태와 이에 맞는 세제ㆍ복지ㆍ연금 제도를 설계했습니다. 이 모델이 구축됐기에 고용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탄탄한 복지체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새 정부가 강조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필요한 건 바로 이 지점에서다. 방 장관은 "주부와 베이비붐 세대, 청년 등 경제활동의 다양한 주체가 모두 전일제 근로만 할 수는 없다"며 "이런 사람들을 노동 시장에 끌어오려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와 같은 다양한 근로 형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공공 부문이 주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민간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다행히 최근 CJ와 SKㆍ삼성 등 대기업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방 장관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해 생애 근로기간을 25세에서 65세까지 40년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표준 근로생애를 40년으로 전제하고 노동정책을 펴왔다"며 "우리도 얼마 전 정년 60세 법이 통과됐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40년 근로생애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65세까지 일하는 시스템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방 장관은 "임금 체계 개편이 필수"라며 "선진국도 다른 묘수를 부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일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 임금체계를 개선했다는 것. 기업은 '고용 안정'을, 근로자는 '고용 유연화'를 양보했으며 이 두 개념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양립해야만 하는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지금의 연공제는 근로주기를 25년, 길어봤자 30년으로 전제하는 임금 체계입니다. 즉 짧고 굵게 일하는 시스템이죠. 이런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임금 체계 전반을 성과급ㆍ직무급 연봉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대화의 물꼬를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로 틀어봤다. 정부의 일자리 로드맵에 대해 중소기업의 불만이 크다고 지적하자 방 장관은 "시간제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각됐을 뿐 중소기업 정책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달 말까지 중소기업청ㆍ고용부ㆍ산업통상자원부ㆍ국토교통부ㆍ교육부ㆍ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 장관이 구상하고 있는 대표적인 중소기업 대책은 지역ㆍ산업별로 맞춤형 인력양성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지역별로 개별 기업의 인력 수요를 파악해 이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훈련시키고 채용까지 이어주는 시스템이다. 고용부는 이외에도 지역 중소기업의 근무환경 개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아가 독일식으로 일ㆍ학습 듀얼시스템을 구축해 교육과 산업 간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할 계획이다.
He is… ▲1957년 전남 완도 ▲1975년 서울고 ▲1982년 한국외대 영어과 ▲1990년 미국 밴더빌트대 석사(사회학) ▲1995년 미 위스콘신메디슨대학원 박사(사회학) ▲1995년 한국노동연구원 ▲2003년 노동부 근로복지정책 자문위원 ▲2008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2009년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위원회 위원 ▲2010년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 ▲2012년 한국연금학회 회장 ▲2013년 고용노동부 장관 |
국민이 알고 국민이 이해하고 국민에 유익한 '3有 실천' ■ 방장관의 노동철학은 소통·현장성 통해 노사갈등 중재 나윤석기자 '국민이 알고 이해하고 국민에게 유익한 것.' 지난 1995년부터 18년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정책을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다 새 정부의 고용노동 정책을 집행하는 사령탑에 오른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신의 노동철학 키워드로 '3有 정책'을 제시했다. 방 장관은 "기껏 만든 정책이 국민에게 홍보가 안되거나, 홍보는 했는데 국민이 이해를 못하거나, 이해는 했지만 국민에게 실익이 돌아가지 않으면 결국 '없는 정책'이나 마찬가지"라며 "이 세 가지가 다 잘 갖춰진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좋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연구원 출신인 방 장관은 그동안 정치권과 긴밀한 인연을 맺어온 인사는 아니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며 고용과 복지를 연계한 새 정부의 정책 구상에 힘을 보탰다. 방 장관은 "연구원으로 있다 정부에 와보니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실천이더라"라며 "나무를 심었으면 물도 주고 햇볕도 쬐게 해야 하듯 정책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잘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노사 갈등의 중심에서 타협점을 찾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고용부 장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소통과 현장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방 장관이 고용부 수장으로서는 2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민주노총을 방문해 지속적인 대화 창구를 만들어가기로 합의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의 결과물이다. 그동안 노동계는 물론 고용부 내부에서조차 방 장관이 워낙 점잖고 부드러운 선비 이미지가 강한 탓에 거친 노동 현장의 한복판에서 겹겹이 꼬인 갈등의 실타래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이 같은 우려가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말 한국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정부 등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체를 가동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대타협을 통한 일자리 협약 체결에 성공하면서부터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시간제 일자리와 근로시간 단축 등 모든 현안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어 타협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며 "협약 체결에 성공하고 민주노총 방문까지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 대신 호의적인 평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방 장관은 정부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넉 달이 채 안 됐지만 이날 인터뷰에서 어느새 추진력 강한 행정가로 변모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임기 중 반드시 개혁과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방 장관은 "고용 구조와 일하는 문화 전반에 혁신을 일으키고 싶다"며 "거창한 것보다는 작더라도 실효성 있는 변화를 통해 개혁을 이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