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달러화 자국통화 채택론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비즈니스 위크지의 컬럼을 통해 "한국이 외환위기를 피하려면 자국 통화를 버리고, 달러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 '양키 제국주의자(Yankee Imperialist)'임을 인정하면서 "한국이 미국과 밀접한 교역 관계에 있고, 미국과 자유무역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는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로 교수의 제안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는 달러를 자국 통화로 쓴 나라들의 고통스런 경험을 애써 무시했고, 미국의 이익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 금융시장의 영향력은 엄청나고,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말은 뉴욕 월가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달러를 자국 통화로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반론에 부딪히고 있다. 첫째, 통화는 주권을 기초단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원화를 포기하고 달러를 쓴다면 주권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달러를 자국 통화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파나마, 라이베리아, 에쿠아도르, 과테말라등 중남미 4개국이며, 아르헨티나에서 달러 사용이 검토된 적이 있다. 그러면 이들 국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난 88년 미국이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한 수단으로 달러 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파나마는 달러가 부족해 낡고 더러운 지폐가 통용되고 극심한 불황을 겪어야 했다. 달러를 사용하는 나라는 중앙은행이 필요없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은 실종하고 미국이 움직이는대로,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격이 변하는대로, 그저 순응해야 한다. 둘째, 배로 교수의 주장과 달리, 한국이 달러를 사용하면 또다른 경제위기를 맞을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97~98년의 외환위기는 한국 정부가 원화를 달러에 고정시켰기 때문에 발생했다. 한국 경제는 일본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일본 엔화가 하락하는데도 원화를 달러에 붙들어 매다 보니 한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고 무역적자가 가중됐으며, 기업들이 휘청거렸던 것이다. 한국이 강세 통화인 달러를 쓴다면 일본과 아시아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해 기업들이 쓰러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셋째, 한국에 달러가 통용되면 미국은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한국과 경제규모가 비슷한 아르헨티나가 지난 99년에 달러를 통용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한 적이 있는데, 그때 페소화를 모두 달러로 바꾸려면 160억 달러가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연간금리 5%로 할 때 미국은 아르헨티나에 지폐를 공급한 대가로 8억 달러의 이자를 절감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미국은 조폐창에서 45센트의 비용을 지불하고 100달러짜리 지폐를 찍어 같은 금액의 한국산 카메라와 교환할수 있다. 미국은 종이돈을 한국에 공급하고 10억 달러 어치의 제품을 거져 가져갈수 있는 것이다. 배로 교수는 "한발 양보하더라도, 양키 제국주의는 최선의 제국주의 형태"라고 끝을 맺었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시절에 일본은행권을 써야 했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차치하고서라도 배로 교수가 스스로 인정한 양키 제국주의는 논리적으로 많은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