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경영의 끝이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이다.”
지난달 본지는 현장취재를 통해 대기업들이 상생경영의 눈치를 보느라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등 벌써부터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즉각적으로 정부(산업자원부)는 이 기사에 대해 “상생경영은 대기업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고 선을 긋고 “일부만의 얘기를 과장한 것”이라며 항의했다.
그로부터 한달쯤 지난 최근 국내 대기업 S사와 계열사가 협력업체 J사로부터 거액의 소송에 휘말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J사 측이 제기한 소송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당시 S사는 협력업체에 일정 규모의 부품을 사주고 라인 이전에도 협조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아 J사가 손해를 입었으니 보상해달라는 것이었다.
내면을 보면 S사만을 믿고 대대적인 설비투자에 나선 J사만 애꿎은 피해를 본 측면도 없지 않다. J사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하는 사업이니까 ‘설마’ 하는 심정으로 어려운 처지에도 투자를 밀고 나갔는데 계산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J사로서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었을 법도 하다.
이 사안은 J사 측이 곧바로 소송을 취하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번 일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중소 협력업체가 투자실패의 책임을 대기업에 전가한, 사회 전반에서 상생경영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에 드러난 첫 케이스라는 점 때문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유사사례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ㆍ중소 상생경영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상생경영을 구호로만 외치다 보니 협력업체들이 사업실패의 책임을 대기업에 전가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게 이 임원의 지적이다.
상생경영을 아예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대기업도 50년, 100년 동안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상생경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기업의 일방적인 양보를 전제로 한 상생경영의 흐름은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중소 업체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는 재계의 목소리를 경청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