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도 자성할 부분 많다"

■ 정부주도 상생 문제없나-전문가 고언
대다수 기업들 혜택 받으려 성장 거부
핵심역량 강화·혁신통해 경쟁력 확보해야
거래공정성 확립은 대·중기 구분없이 추진을


"더 이상의 시혜적(施惠的) 상생 논의는 대ㆍ중소기업 누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 대기업의 2차 협력사 대표는 "최근의 상생협력 논의가 대기업과 정부가 뭔가를 더 베풀어야 한다는 논의에 머물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 기업 간 거래의 공정성 확립 등에서 중소기업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이 자성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소기업의 혁신을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데 가장 시급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으로 불리는 중소기업의 성장 거부 트렌드다. 중소기업기본법상 종업원 수 300인 이하, 자본금 80억원 이하 규모면 중소기업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규모를 넘어서면 혜택이 사라진다. 때문에 대다수의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강소기업이 되기보다는 성장을 거부하고 안주하려고 하며 이 때문에 혁신활동이 지체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재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장은 "독일과 일본의 강소기업들을 한국과 비교하면 대기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규모"라면서 "중소기업들이 전략을 가다듬고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등 도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한 대기업의 구매담당 임원은 "중소기업의 성장이 과연 고용과 투자 증가로 이어지는지도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영리법인 중 중소기업 숫자가 99%를 차지하고 고용 또한 88%를 차지하지만 중소기업의 성장이 투자 및 고용확대로 즉각 이어지지는 않는 사례를 여러 차례 지켜봤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일부 중소기업은 사정이 넉넉한데도 불구하고 직원 처우가 여전히 낮고 고용도 불안하며 투자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면서 "구태의연한 경영, 오너 경영자들의 제왕적 사고방식은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을 중소기업 스스로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기업 간 거래관행의 공정성을 확립하는 데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구분이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유 센터장은 "대ㆍ중소기업 간 거래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시각보다는 기업 간 거래, 즉 다자 간의 틀에서 공정한 거래관행이 논의돼야 한다"면서 "큰 기업이 거래질서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잘못된 부분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중소기업도 재무적인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들의 재무가 고루 투명해야만 기업 간 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 센터장은 "중소기업 간 거래를 포함한 모든 기업 간 거래가 투명해진다면 시장 전체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총 82개 분야에서 1,080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예산도 무려 133조원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이 무조건 베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제도가 미흡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기존의 제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정책자금 등을 더 타내기 위해 자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엄살을 부리고 로비에 몰두하는 버릇도 고쳐야 될 점으로 지적됐다. 중소기업청ㆍ중소기업진흥공단ㆍ신용보증기금ㆍ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의 지원기관들로부터 매년 수십조원의 정책자금과 보증을 지원받는 데 재미를 붙여 브로커까지 동원하는 행태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 중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책자금을 받아 부동산 투자를 하는 데 쓰는 중소기업들이 많았다"며 "중소기업들이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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