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 리메이크.리바이벌 제작 붐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며 앞으로만 전진해왔던 쉰세대들. IMF한파는 이들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웠다. 혼돈과 좌절을 겪으며 괴로워하는 이들은 지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게 당연할 것이다.광고업계에는 이들 계층의 이같은 심리에 편승한 리메이크 혹은 리바이벌 광고가 유행하고 있다. 광고업계로서는 어려워진 경영상황에서 제작비를 줄이자는 측면도 있겠고 인지도 높은 광고를 다시 틀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도 느껴진다. 「지금 이순간~」으로 시작되는 CM송. 엘리베이터 문을 「탁」하고 내려치며 안타까워하는 남자의 모습. 그래, 옛날에 본 적이 있는 바로 그 광고다. 내 이름은 트라이, 트라이가 돌아왔다. 지난 90년 쌍방울은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이덕화를 모델로 기용해 트라이광고를 내보냈다. 남자의 강렬한 눈빛, 알듯모를듯 미소를 보내는 여자, 갑자기 엘리베이터는 닫히고 남자는 아쉬워한다. 새로 나온 유동근 역시 보통이 아니다. 한 장면을 위해 수십번 문을 내리쳐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쌍방울은 지난해 마케팅조사를 했다. 설문 가운데 광고인지도를 물어보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나온 10여편의 트라이광고 가운데 최고의 인지도를 보인 것이 벽치는 광고였다. 기존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오니 제작비는 많이 줄 것이다. 웬만한 소비자들은 무릎을 치며 『그때 그 광고』를 외칠 게 분명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시 트라이」로 명명된 99년판 벽치는 광고는 만들어졌다. 유한양행의 초기감기약 「콘택600」리바이벌광고는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 새로 찍을 필요도 없이 아예 옛날 것을 다시 틀기 때문이다. 물론 달라진 시대상황에 맞춰 배경음악도 조금 바꿨고 편집도 조금 다르게 하기는 했다. 30대 이상의 소비자들은 대부분 이 광고를 기억한다. 지난 70년대 일요일 저녁의 최고 인기프로였던 「웃으면 복이 와요」와 「수사반장」 사이에 방영된 광고다. 소방관이 물을 뿌리며 화재를 진압하다가 재채기를 한 뒤 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컵에 받아 약을 먹고 다시 화재를 진압하는 내용이다. 재편집된 광고는 끝에 『감기는 잡았고』라는 소방관의 말만 더 들어있다. 약광고는 브랜드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최고다.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지 않고 사게 되는 저관여제품이기 때문에 순간 떠오르는 인상을 중시한다. 잘만든 광고와 못만든 광고 양쪽에서 다 선정된 속청 광고가 대표적이다. 콘택600광고 역시 초기감기 진압 하면 바로 생각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제작진은 이를 다시 틀어 소비자가 그 이미지를 상기하도록 했다. 또 요즘 유행이 코믹쪽인데 착안해 화재 진압 도중 감기약을 먹는 내용으로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남녀노소 모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약광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CM이다. 지난해 말에 나온 알카바건전지 광고는 기본적으로 리메이크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알리고자 하는 컨셉을 바꾼 것이 색다르다. 일면 재활용에 가깝다. 화면 내용은 똑같다. 전기를 다 쓴 폐건전지들이 쓰레기처럼 널려있는 공동묘지. 「파~박」 스파크를 일으키며 근육질 사람몸체의 알카바캐릭터가 등장한다. 2년전 광고는 여기에 다시 쓸 수 있는 「재충전」을 컨셉으로 카피를 만들었다. 이번에 나온 광고는 오래 쓸 수 있는 「강력한 건전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같은 때에는 노래에도 리메이크와 리바이벌이 유행을 하듯 광고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과거 호시절에 붐을 이루던 해외로케제작이 이제는 쑥 들어간 것도 같은 이치다. 「저비용 고효율」의 본보기가 될 지 약효 떨어지는 재탕이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CM의 평가는 결국 제품의 사는 소비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기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