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빈민가 아이에 자존감 심어줘요

■ 예술 교육 본보기 '엘 시스테마' 창립자 아브레우 박사 방한
프로 음악가 만드는 게 아니라 소외 청소년 구하는 것이 목표
연간 35만명에 음악교육 실시… 20일 국내 학생들과 합동공연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프로 음악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입니다."

베네수엘라 청년ㆍ유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가치를 함축한 말이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4ㆍ사진) 박사가 1975년 카라카스의 허름한 차고에서 빈민가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가르치며 시작됐다. 마약과 폭력, 포르노, 총기 사고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범죄 예방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협동ㆍ질서ㆍ소속감ㆍ책임감 등의 가치를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실험적인 음악교육 프로그램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38년이 지난 현재 세계 280여개 거점 기관에서 연간 35만여명의 아동ㆍ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사회 개혁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오케스트라의 취지에 공감한 베네수엘라 정부와 세계 각국의 음악인, 민간 기업의 후원으로 미취학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악교육 시스템으로 정착된 것이다. 구스타보 두다멜 현 LA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인 에딕슨 루이스를 비롯해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인물들은 곳곳에서 전문 연주자로서 역량을 뽐내고 있기도 하다.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엘 시스테마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연주하고 싸워라' '엘 시스테마'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예술교육의 본보기로 평가받는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 아브레우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17일 오전 서울 수하동 페럼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소수의 가진 자가 아닌 베네수엘라 전체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창의적 음악교육 프로그램이 됐다는 게 38년을 지나온 엘 시스테마의 성과 중 하나"라며 "특히 소외 받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자존감을 심어주고 그것을 하나의 시민정신으로 자리 잡도록 이끌었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아브레우 박사의 이번 한국 동행에는 엘 시스테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 일부가 함께했다. 이들은 오는 20일 오후5시 덕수궁 중화전에서 한국의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합동공연을 펼친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상호 협력, 존중을 기반으로 한 엘 시스테마의 교육 철학을 일부 적용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2010년 시작한 국내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현재 전국 30여개 거점 기관에서 1,600여명의 학생이 교육을 받고 있다. 아브레우 박사는 "이번 합동공연을 통해 양국의 각기 다른 문화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 양국 각자의 노력으로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음악 속에서 참된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부디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아이들이 훗날 사회의 좋은 재목이 돼 한국ㆍ베네수엘라 양국 교류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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