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택시업계 눈치 보는 서울시


지난 13일 서울시는 심야버스 노선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기자 설명회를 준비했다가 슬그머니 취소했다. 많은 시민들이 심야버스 노선 확대를 기다려 왔지만 서울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심야버스는 버스나 지하철이 끊기는 자정 무렵부터 첫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5시까지 대중 교통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서울시가 올해 4월 시범 도입했다.

현재 강서~중랑(동서구간), 은평~송파(남북구간) 등 2개 노선이 운영되고 있는데 야간 근무하는 시민들과 학생들 사이에 인기 폭발이다. 요금이 택시 기본요금의 절반(1,050원)도 되지 않는데다 자정 무렵에 택시를 잡느라 애를 쓸 필요도 없으니 예견된 일이다.

노선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서울시는 심야버스 노선 확대를 머뭇거리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의 편의보다 택시업계의 이익을 먼저 고려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택시업계는 심야버스를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심야시간 대에 손님을 집중적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데 택시 고객의 상당 부분이 심야버스로 옮겨 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개인택시조합의 이광림씨는 "오후9시부터 다음날 오전9시까지만 운행하는 '9조'에 속한 기사는 대략 2,000명"이라며 "서울시가 올해 초에 '9조'를 도입하라고 해놓고 지금 와서 심야버스를 확대하면 택시는 다 죽으란 말이냐"고 항의했다.

심야버스 확대 발표 연기를 두고 서울시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내년 재선 도전을 이미 선언한 상태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택시업계가 임금 단체협상을 진행 중이다. 마무리되는 대로 원만한 협의를 거쳐 다시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찌 됐든 택시 노조를 쓸데없이 자극하지 않겠다는 속내로 읽히는 대목이다.

몇 달간 준비해온 실무자들은 당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관계자는 "위에서 (연기)지시가 내려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심야버스 확대 계획이 원안(9개 노선 운영)보다 축소되고 시행 시기도 연기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박 시장은 "시민편의가 우선"이라고 강조해왔지만 결국 표 앞에 한쪽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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