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버림의 경제학… 필요없는 물건 버리고 돈·공간·행복 얻는다

자리 차지하던 물품 잘 정리하면 공간 넓어져 '스위트홈' 덤으로
헌옷서 신발·서적·가전·가구까지 온·오프라인 중고매매 사업 활발
"돈보다 기쁨" 사회기부도 잇달아


알라딘 중고서점 내부

우리나라의 가용면적당 인구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대도시의 높은 부동산 가격 탓에 한국인들은 좁은 공동주택에서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평균 주거공간 크기는 24.9㎡(2010년 현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좁은 집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 중 1인당 국내총생산(GDP) 상위 17개국을 평가해 내놓은 '2013 구조개혁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2011년 기준)은 여전히 2,000시간을 훌쩍 넘어 조사 대상국 중 단연 1위였다. 17개국 평균보다 30.5%나 길었다. 결국 넓은 야외로 나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한국인에게 집이란 좁고 답답할지라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내에서 얼마 전부터 '정리하고 버리기'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쉬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치러야 할 경제적 비용이 너무 비싼 탓에 그 대안으로 기존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잡동사니로부터의 자유'의 저자 브룩스 팔머가 던지는 "피땀 흘려 일해서 주택대출금을 갚거나 집세를 내는 이유가 고작 당신의 잡동사니를 방치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가"라는 반문은 한국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질 만하다.

내가 쉬어야 할 공간을 불필요한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제 과감한 결단 끝에 물건을 치우고 있다. 이불 압축팩, 공간 박스 등 수납 보조용품을 이용해 정리를 시도해보기도 하지만 완전히 치우지 않고서는 필요한 공간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버림'을 택한다. 버리는 대신 공간을 확보하고 부차적으로 돈이나 보람까지 덤으로 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버리는 사람 늘자 관련 사업도 성황="영업비밀이라 정확한 매입 신청 건수 등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인터넷 헌옷 매입업체 헌옷삼촌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업내역 공개를 꺼렸다. '헌옷 버리지 말고 팔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헌옷삼촌의 네이버와 다음 커뮤니티 회원 수를 합하면 2만여명. 최근 필요 없는 물건을 처리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업이 성황을 이루자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사업 아이디어를 노리기도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고객들이 가장 많이 내놓는 물건은 아무래도 옷이 1위이고 신발ㆍ가방ㆍ이불 등이 함께 수거된다"며 "직접 방문 수거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착불 택배를 이용해 처분할 물건을 받은 후 일정 금액을 고객에게 입금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옷ㆍ신발ㆍ가방ㆍ커튼ㆍ이불ㆍ카펫 등은 ㎏당 350~400원, 폐지는 ㎏당 70원, 프라이팬ㆍ양은그릇 등은 ㎏당 400~500원에 수거된다.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해 수거 신청을 하면 보통 다음날 방문해 수거해가는데 신청자들은 불필요한 물건을 넘기고 2만~6만원 정도를 받는다.

먼지가 쌓인 중고서적을 처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 2008년 온라인 서점 업계에서 중고서점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알라딘의 경우 2011년부터는 오프라인 중고서점 사업까지 시작했고 현재는 중고서적 매매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중고서적 부문 성장률은 34%였으며 올해도 이를 능가하는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다. 알라딘 관계자는 "신촌점의 경우 매일 1,000여권, 부산ㆍ종로ㆍ분당점의 경우 하루 2,000~3,000권가량의 중고도서가 새로 들어간다"며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보다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알라딘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고객들로부터 중고서적을 매입하기도 하고 착불 택배를 통해 사들이기도 한다. 매입 가격은 정가의 20~30% 수준이다.

◇잘 버려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불필요한 물건과 현금을 교환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돕는 '기쁨'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름다운가게ㆍ옷캔 등 중고물품을 국내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곳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조윤찬 옷캔 대표는 "후원자들이 보내준 헌옷을 제3세계 국가 아동들의 교육에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기부 받은 옷을 아프리카 말라위의 중고의류상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 중고의류상은 현지 시장에서 싼값에 판매하고 옷캔은 수익금을 이용해 말라위 아이들의 미술교육, 식수사업을 진행한다.

조 대표는 "요즘에는 개인 후원자뿐 아니라 기업들까지 나서 사회공원 차원에서 헌옷 기부를 권장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옷캔 역시 기부자들의 편의를 위해 착불 택배를 이용해 기부를 받고 있다.

중고물품 기부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 아름다운가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가게가 수거하는 기증물품은 의류부터 생활잡화ㆍ도서ㆍ가전ㆍ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단, 내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쓸모 있는 사용 가능한 수준의 물건이어야 한다. 아름다운가게는 서울시와 함께 중고물품 벼룩시장도 운영하고 있다. '뚝섬 아름다운나눔장터'라는 이름으로 뚝섬한강공원에서 주말마다(겨울철 제외) 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만 36만명이 다녀갔다. 이 곳에서는 판매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벼룩시장 판매자가 되려면 홈페이지에 사전 신청을 한 후 추첨에서 뽑혀야 중고물품을 들고 장터에 나갈 수 있다.

박종수 서울시 자원순환과장은 "장터 판매자들은 수익금 중 일부를 기부금으로 내놓는다"며 "올해는 기부금을 모아 소외계층 독서교육과 방학 중 급식지원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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