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 유로 단일 화폐 도입, 구동독출신 메르켈총리선출,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왼쪽부터 시계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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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3일 독일이 통일 20주년을 맞이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ㆍ서로 나뉘어 오랜 기간 반복했던 독일의 통합은 지구촌에서 이념 갈등을 종식시키고 유럽연합(EU) 내 유로존 창설의 촉매제가 되는 등 현격한 글로벌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후 독일은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을 감내하면서도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 입지를 굳건히 지켜왔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이 2005년 총리로 선출되는 등 사회갈등도 원만히 봉합해가는 양상이다. 그러나 동서 격차 해소 등 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한세대 이상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독일의 독보적인 입지 수성을 사실상 가능케 했던 '유로존'이라는 배경이 흔들리고 있어 독일 경제가 다시 한 번'기로'에 서 있게 됐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유럽 전반의 위기로 소비가 감소하게 되면 든든한 수출기지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누려 왔던 독일의 위상도 추락할 수 밖에 없고, 이 경우 구 동독과 서독 지역의 격차 해소 역시 느려지며 국가 위상 저하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 20주년, 눈부신 경제 발전=단기적으로 보면 통일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통일로 이뤄낸 정치적 경제적 '웰빙'은 눈부시다. 통일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가장 큰 시장을 갖게 되며 막대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려 왔다. 올 봄 이코노미스트가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 동독인의 91%와 서독인의 85%가 통일이 옳았다고 답했을 정도로 통일에 대한 국민 지지도 높다.
구동독인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991년 구 서독인의 40%에 불과했으나 지난 2008년에는 70%로 상승했다. 구 동독의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로 서독과 비슷한 수준이다. 도로ㆍ전화망 등 새로 깔린 사회간접시설 또한 훌륭해 서독 지역의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구 동독인들의 평균 수명도 통일 전에 비해 6년 가까이 늘었다.
이런 발전은 독일정부가 GDP의 4% 수준에 가까운 막대한 비용을 당초 예상(1.5%)보다 초과 '지불'한 데 따른 것이지만 마냥 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구 서독 입장에서도 이념 대립의 산물이었던 사회안보 및 군비가 감소하게 됐고 평균 임금이 낮아지는 효과도 봤다. 무엇보다 총인구가 크게 늘어나며 인구 감소와 싸워 온 서독 정부를 기쁘게 했다.
◇한 국가 두 국민, 경제ㆍ사회 격차는 미해소=하지만 독일 내 동서 갈등은 무너진 베를린 장벽처럼 완전히 사라지진 못하고 있다. 동독인 로즈마리 크레이머씨는 20주년의 소회를 묻자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우리가 원하던 게 아니다"고 술회했다. FT에 따르면 구 동독 주민 중 통일 이후 지난 20년 동안 동ㆍ서독인들이 같은 국민이 됐다고 보는 견해는 27%에 불과했다.
독일은 분권화가 잘 돼 있어 농촌이 윤택하고 지역간 소득 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구 동독 지역은 이같은 균형에서도 역시 예외다.
인구 감소와 실업, 경제 파워 이동으로 통일 직후인 1990년에서 1992년까지 3년 사이에 동독에서는 2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1989년 이래 430만 명의 독일인이 동독 지역을 떠나야 했다. 통일 뒤 5년 동안 동독 회사 1만4,000개가 문을 닫았고 일자리를 잃은 인구는 400만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동독 기업의 경쟁력도 급속도로 상실됐다.
한때 20%를 넘나들었던 구 동독의 실업률은 현재 11.5%로 구 서독의 6.6%보다 여전히 2배 가량 높다. 실제 인근 '천혜의 관광지'인 스위스에서 만날 수 있는 독일인들의 상당수는 사업장의 주인이나 관광객이 아닌 점원이다. 구 서독 젊은이들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한 구 동독 젊은이들이 높은 임금과 일자리를 찾아 독일어권인 스위스로 이동한 것이다. 동독인들의 평균임금이 서독의 70%수준까지 따라왔지만 상당 부분 정부 지원금에 근거한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 독일 동서격차 문제 부각시킬 듯=유럽 발 재정위기는 독일에게도 지난 20년보다 험난한 20년을 예고하고 있다는 평가다. 유로존(유로화통용 16개국)이 현재대로 유지한다 해도 유로화 약세가 불가피하고 만약 일각의 우려처럼 유로존 자체가 붕괴할 경우 이웃국가 대비 수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구 동독 지역 경제가 구 서독의 가장 가난한 주까지 상승하는 데 10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경제 성장이 저하될 경우 뒤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로화는 지난 재정위기 국면에서 나라간 격차가 보여주며 안정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유로존 창설 이후 10년간 누려온 '유로화 강세'가 앞으로도 계속되긴 힘든 상황이다. 이 경우 화폐 가치로 막대한 통일 비용 및 지원 비용의 상쇄 효과를 본 정부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독일의 수출시장 역할을 해 온 유로 지역 및 글로벌 경제의 추락은 수출 위주의 구 서독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어 '과실'을 동독과 나누는 작업에 대한 구 서독 지역의 저항이 짙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로존 중 독일의 탈퇴 여론이 가장 높지만 깨질 경우 독일이 마냥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중해 국가들은 단일존으로 묶이면서 화폐(유화화) 가치가 급등해 수출 경쟁력을 잃어버렸고 이는 지난 10년간 동서 격차가 심한 독일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었다"며 "남유럽국가들이 막대한 소비 잔치를 벌인 배경에도 독일이 한 몫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