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시장의 왜곡현상

기업인들 특히 제조업 경영자들의 장탄식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들은 요즘처럼 제조업 하기 힘든 때가 없었다고 한다. 내수침체의 골이 너무 깊다고 우려한다. 1,000원 짜리 상품을 만들어 10원 남기기도 어렵다고도 한다. 때문에 더 이상 국내에서 제조업은 못하겠다고까지 한다. 그래서 아예 중국ㆍ베트남 등 동남아로 보따리를 쌀 궁리까지 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아직도 배짱장사가 통하는 아파트 시장 그러나 아파트 시장은 정반대다. 최근 신규아파트 시장에서 “안 팔려도 좋다”는 배짱장사가 계속되고 있다. 원래 신규아파트 분양가는 기존 아파트 값의 70~80% 수준이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신규아파트 분양가는 오히려 기존 아파트 값 보다 10% 이상 높다. 최근에는 “돈 있는 사람만 우리 아파트를 사라”며 가진 자들만 겨냥한 `귀족마케팅`까지 판치고 있다. 6차 서울 동시분양에 강북에서 처음으로 평당 2,000만원을 넘는 아파트가 나왔다.당연히 이 아파트는 대부분의 평형이 미달됐다. 그러나 관련 시행ㆍ시공사는 미달사태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 회사는 “동시분양 청약경쟁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 살 사람들이 중요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들은 동시분양을 통한 청약은 안중에 없다. 일반분양 분 가구수가 20가구가 넘어서 어쩔 수 없이 동시분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한다는 것 뿐이다. 따라서 청약통장을 가진 서민들이 모이는 동시분양에서의 미달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가진 자들의 전리품이 된 고급아파트 강북에서 처음으로 평당 2,000만원을 넘은 용산의 한 아파트를 보자. 이 아파트는 총 170가구 분양에 69, 75, 82평형은 대거 미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3순위까지 갔어도 82평형 28가구 중 20가구가 미달되는 등 총 69가구가 미달됐다. 그러나 시행ㆍ시공사 관계자는 느긋하다. 이들의 본격 마케팅은 동시분양 청약접수가 끝난 뒤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동시분양 청약접수는 당초부터 기대를 안 했다”며 “청약미달 분에 대해 미리 확보한 두터운 대기 수요층을 대상으로 이제부터 본격 마케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5차 동시분양에서 선보였던 서초동 `더 미켈란`의 경우는 정도가 더하다. 강남권 아파트로는 19개월 만에 3순위 청약접수에서 조차 미달됐다. 지금껏 총 31가구 일반 분양분 중 5가구밖에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 미켈란측 역시 여유만만이다. 시행사인 ㈜도시와사람은 일부 평형이 평당 3,000만원을 넘는데 동시분양에서 15가구 청약이 이뤄진 게 오히려 의외란 반응이다. 이들은 내년 초 모델하우스를 지을 계획이다. 동시분양 때는 일반인 청약을 외면, 모델하우스도 짓지 않은 것이다. 최고급 마감재와 내부 편의시설을 확인할 수 있는 모델하우스를 현장에 지어 이제부터 `진짜분양`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꿀 대책 시급 10일 최종 3순위까지 마감한 서울지역 6차 동시분양에서 2년 만에 100가구가 넘는 대량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지난해말 만 해도 동시분양 청약경쟁률은 보통 수백 대 일을 넘었다. 심지어 4,700대 1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청약에 당첨되면 `복권당첨` 됐다고까지 여겨왔다. 고급아파트는 가진 자들의 전리품이 되고 있다. 못 가진 자들에게는 박탈감만 키우는 질시의 대상이다. 그러나 집은 결코 사치품이 될 수 없다. 삶의 기본 요소인 의ㆍ식ㆍ주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경우 아파트가 치부 내지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갈수록 이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우리사회의 고질병으로까지 고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 당국은 집값 안정에 쏟는 정성만큼 아파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꿀 정책도 강구해야 될 때다. 그것이 장기적이면서 가장 확실한 `집값안정 대책`이 아닐까 싶다. <신정섭(건설부동산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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