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정치·경제 양쪽에서 우리를 압박한다. 오는 9월3일 전승절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대놓고 요구하는가 하면 위안화 평가절하로 우리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무례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다. 물론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중국의 압박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중국을 대하던 우리의 뒤통수를 확실하게 쳤다.
지난 1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뜻이 있는 곳에 도리가 있다'는 논평을 1면에 게재했다. 환구시보는 통상 중국 공산당의 논지를 강한 어조로 표현하는 매체다. 다시 말해 외부에 중국 공산당의 의지를 여과 없이 내보내고 반응을 살핀다.
논평에 조목조목 써놓은 박 대통령의 방중 이유는 한중 관계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환구시보는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미국 등의 압박에 직면해 있지만 그런 압력은 낮은 수준이고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라는 점을 꼽았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경제적인 관계로 압박을 가했다. 뒤이어 중국의 초청에 한국은 '정리와 도리' 차원에서라도 적극 호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가 감기에 걸리는 상황에서 할 말 없게 만드는 압박이기는 하다. 이 밖에 상하이 임시정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 한국의 독립적 외교, 한미 동맹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얘기의 핵심은 한중 간의 경제적 관계를 정치적 관계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둘러싸고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이익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그뿐이다. 물론 보수진영이 한국전에서 적으로 싸운 인민군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방적인 떼쓰기도 아니다. 묘수를 찾아야 한다. 러시아 전승절 기념식을 두고 고민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열병식 다음 날 러시아를 방문해 예의도 차리고 실속도 얻은 외교전략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놓고 갈등에 빠지면 항상 등장하는 전략이 '안미경중'이다. 안보는 미국과 손을 잡고 경제는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안미경중' 전략은 중국의 노골적인 열병식 참석 압박에서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국이 경제를 앞세워 정치적 압박을 행사했을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다. 양국의 갈등이나 화해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한중 관계를 유지하기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미중을 두고 벌인 줄타기의 줄이 끊어질 수도 있다.
최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뭇매를 맞고 있다. 반제품 수출이 늘 것이라는 좁은 시각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낮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중국이 열병식을 여는 목적을 분명히 파악하고 이에 맞춰 전략을 짜야 한다. 참석했을 때 그냥 시진핑 주석이 흔드는 손에 맞춰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는 병풍이 돼서는 안 된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있는데 한국의 대중 정책은 없다"는 비판대로 수동적 외교로는 갈등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15일은 광복 70주년이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가끔은 상상을 해본다. 대한제국의 외교가 좀 더 일찍 눈을 뜨고 좀 더 많은 나라와 관계를 형성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김현수 베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