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월 23일] 오바마 시대 개막과 중동

며칠 전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아랍대사들과 한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과 그의 중동정책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무력 중심의 일방주의에서 글로벌을 끌어안는 협력적 상생의 정책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아랍인들의 소외와 불공정한 미국의 중동정책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국제법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같은 보편적인 가치규준이 흔들리면서 중동지역은 끊임없는 테러 위협과 전쟁의 불행을 맞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고립시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분리장벽은 이미 국제사법재판소로부터 즉시 철거하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전쟁 이후 계속 강제 점령해온 웨스트뱅크나 골란 고원, 가자 지구 등도 이미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조, 338조 등에 의해 군대의 즉각 철수와 영토 원상회복을 만장일치로 결의해놓았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은 이를 지킬 의사가 별로 없다. ‘이스라엘의 안보는 이스라엘이 지키고 이스라엘만이 결정한다’는 이스라엘식 일방주의 때문이다. 여기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같은 맥락으로 가세해 중동 문제는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맞았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가진 분노와 응어리의 직접적인 원인은 점령지 지역 주민들이 일상으로 겪는 극심한 경제난이다. 자기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이 2만달러 가까운 풍요를 누리고 있을 때 자신들의 삶은 생존의 문제에 부닥쳐 있다. 주민 대다수가 실업상태이고 분리장벽과 바다에 갇힌 가자의 젊은이들은 비극적이게도 자살특공대 이외에는 뚜렷한 삶의 출구가 없다. 무엇보다 2007년 6월 이후 18개월 이상 계속된 이스라엘의 물과 전기 공급 중단은 가자 지구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과 폭격으로 의외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데는 거의 마비된 의료시설 부족도 한몫을 했다. 다행히 양측은 휴전에 합의하고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에서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아랍 언론들을 종합해보면 가자시티의 유엔빌딩 앞에서 연설하는 반 총장의 모습에 많은 아랍인들은 두 개의 희망을 보았다. 지금껏 다른 유엔 최고 책임자와 달리 마음에서 우러나는 평화의 호소와 중동사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열정이 그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반 총장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남다른 신뢰가 생겼다고 한다. 세계 최강 수준의 첨단무기와 군사력을 가진, 심지어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이 국제법상 무장도 할 수 없는 하마스를 상대로 자국안보를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가진 자가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양보하지 않으면 국제적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아니면 인종청소를 통해 한쪽만 존재해야 한다. 인류의 5,000년 역사가 주는 준엄한 교훈이다. 미국이 대테러 전쟁에 퍼붓는 예산의 단 5%만이라도 빼앗긴 자들의 생존과 경제적 혜택에 투자한다면 테러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대테러 전쟁 이후 지구촌에서 테러가 네 배가량 더 늘어났다는 슬픈 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아랍과 유대인은 원래 종족적으로 한뿌리고 같은 신을 섬기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스라엘 국민들의 절대다수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이웃 아랍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파적 이해를 위해 전쟁도 마다 않는 극단적 정치세력도 테러 제거 수준으로 응징하는 법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미 카터가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아랍과 이스라엘을 평화의 파트너로 만들고 빌 클린턴이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두 민족이 상생하는 구체적인 틀을 마련했다면 이제 오바마는 중동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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