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영수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

"건설경기 살리려면 규제 확 풀어야"
10·21대책등 단기 유동성 지원은 실효성 떨어져
고분양가 해소, 땅·자재값 올라 업계 노력만으론 한계
지방 미분양문제 해결 위해선 한시적 세제혜택등 고려를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산을 뺏어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건실한 업체마저 살아남지 못합니다.” 김영수(47)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건설업계에서 ‘젊은 피’에 속한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중견ㆍ중소주택건설업계의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에 오른 것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그만큼 주택업계가 처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위기에 빠진 업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젊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건설업계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현실을 겪고 있다”며 “그때는 정부가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규제라도 확 풀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과 만나 주택건설업계의 어려움과 미분양 문제, 건설업계의 위기극복을 위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주택건설업계는 이미 ‘어렵다’는 말 자체가 진부해진 듯합니다. 6월 취임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중견ㆍ중소업계를 이끌고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상황입니까. ▦심각합니다. 저 역시 건설업체를 경영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앞일에 대한 걱정이 일어 새벽에도 잠을 설칩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이미 아시다시피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업계 전체가 겪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활동 중인 회사들은 모두 외환위기를 이겨낸 곳들입니다. 특히 당시 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였지만 지금은 정부의 규제까지 있어 업계로서는 이중ㆍ삼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최근 건설업계의 단기 유동성 확보와 주택투기지역 해제 등을 담은 10ㆍ21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단 정부가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방치할 경우 자칫 실물경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고 인식한 것은 고무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 역시 실효성과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들입니다. 단기적인 유동성 해소 지원책으로는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시장 원리와 맞지 않는 규제는 풀어야 합니다. 참여정부 때 모두 꽁꽁 묶지 않았습니까. 그때 묶은 것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고 택지를 되사줄 경우 자금난을 겪고 있는 주택건설업계에는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직후 업계도 이번 대책에 대해 나름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아는데요. ▦일선 업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릅니다. 그냥 보기에는 꽤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막상 업체들 입장에서는 속 빈 강정이라는 반응입니다. 한국토지공사 등을 통해 이미 판 공공택지를 되사주겠다고 했지만 아마 환매요청을 하는 업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땅을 되팔아 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그 돈은 모두 금융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조달한 것이어서 결국 은행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셈이죠. 계약금 10%는 아예 돌려받지도 못하니 정작 돈은 쓰지도 못하고 빚만 남게 되는데 어느 업체가 환매를 신청하겠습니까. -집값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시각에 괴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주택업계는 집값이 떨어졌다고 얘기하지만 아직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인 것 같습니다. ▦물론 참여정부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집값이 높은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요자들, 특히 서민이나 중산층의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때는 집값이 한창 치솟았던 2006년 가을을 전후한 때입니다. 정부만 믿었다 치솟는 집값에 부랴부랴 내 집 마련을 한 거죠.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면 중산층의 고통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동산시장의 규제를 잘못 풀었다가는 다시 집값이 들썩거려 부동산 투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정부가 규제완화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전매제한이나 주택투기지역 해제로 대출규제를 풀었지만 집값이 뛸 기미가 있습니까. 오히려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집값이 폭등해 아파트 투자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집값 급등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인지 정부가 규제완화에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업계가 어려움의 원인을 정부 정책 탓으로만 돌리고 너무 기대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구조조정’을 강조하며 업계의 자구책 마련을 촉구한 것도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데요. 업계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는 자꾸 고(高)분양가의 원인을 주택건설업체 탓이라고만 하는데 업계 자체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업체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업부지를 팔고 미분양 아파트 판촉을 위해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력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는 업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주택건설업계에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분양가는 주택건설업체 혼자서만은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땅값이 올라간 게 업계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부가 마구잡이식으로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하고, 이 과정에서 사업을 빨리 추진하기 위해 토지보상비를 높여주다 보니 주변 땅값까지 덩달아 뛰었습니다. 금융권 역시 사업이 잘될 때는 서류도 안 들여다보고 서로 돈을 대주겠다고 나섰지만 이제 와서는 여건이 악화되니까 신규 PF는 물론 기존 대출까지 회수하고 나서는 등 모두 주택건설업체들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자재 역시 업체들이 분양가를 내릴 수 없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자재 값이 오를 때는 값을 올리더니 막상 원자재 값이 떨어져도 이를 제때 반영해 값을 내리는 업체는 거의 없다 보니 업계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이 지방 미분양 문제인데요. 대구에서만 2만가구가 넘는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정부가 몇 차례 대책을 통해 지방 부동산에 대해 규제를 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규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누가 지방 아파트를 사려고 하겠습니까. 결국 현재로서는 서울 등 수도권의 투자자들이 집을 사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지방 아파트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라도 과감하게 양도소득세나 재산세ㆍ종합부동산세 등을 낮추거나 없애줘야 합니다. 정부가 최근 미분양 아파트를 환매조건부로 되사준다고는 하지만 분양가보다 30~40% 깎아서 어떻게 팔 수 있겠어요. -물론 값을 크게 내려 파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팔리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할인해 팔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값을 내려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어요. 미분양분에 대해 분양가를 낮춰 판다고 해보세요. 당장 기존 계약자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대규모 계약해지 사태가 불 보듯 뻔하죠. 집을 팔지도 못하고 오히려 미분양만 더 늘어나는 역효과만 생깁니다. -결국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싼값에 택지를 공급하는 게 관건일 것 같습니다. 공공택지를 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요. ▦불합리한 택지공급 시스템만 바꿔도 의외로 분양가 인하효과가 클 수 있습니다. 지금 공공택지는 돈을 내고도 3년이 지나야 아파트를 지어 분양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 기간 동안 고스란히 땅에 돈이 묶여 있게 되는 거죠. 최소한 잔금을 내고 나면 곧바로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자재 가격 역시 정부 차원에서 이를 조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철근만 해도 분양 당시 톤당 45만원 하던 가격이 막상 아파트를 지을 때는 105만원으로 2배 이상 올랐습니다. 실제로 일부 자재 생산업체들은 가격 유지를 위해 수급조절까지 하는 의심을 낳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큰 만큼 정부가 추가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신데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들이 마련돼야 할까요. ▦지금까지 정부의 신도시 등 택지공급은 민간과는 동떨어져 이뤄졌어요. 해당 지역에 민간업체들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정확한 시장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죠. 가능한 민간과의 중복을 피하고 공급과잉 지역에서는 신규 택지 공급을 중단하고 오히려 적정 가격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여야 합니다.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는데 이러면 오히려 공공 부문의 역할만 강화됩니다. 민간에 넘길 것은 넘겨줘야 합니다. 또 건설업체들을 적자로 내모는 최저가낙찰제도 ‘최적가’낙찰제로 과감하게 바꿔야 합니다. 약력 ▦1961년 경기 과천 ▦2003년 경기대 경영학과 ▦2008년 경기대 서비스경영대학원 박사 ▦1984년 신창주택건설 설립 ▦2004년 신창건설 대표 ▦2005년 대한주택건설협회 경기도회장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부회장 ▦주택산업연구원 이사 문닫는 건설사 수두룩 작년부터 9월까지 1,700여곳
수도권 업체가 전체의 64%나
'주택업계는 지금 휴ㆍ폐업 중.' 공식 집계로만 16만가구를 넘어선 미분양 아파트로 문을 닫는 주택건설업체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더 이상 집을 지을 여력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업자 등록을 반납하는 업체가 크게 늘고 있는 것.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주택경기가 위축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등록말소되거나 면허를 자진반납한 업체 수는 무려 1,744곳에 이른다. 지난 2006년 534개 업체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944곳으로 증가했고 올 들어서는 9월 말까지 820개 업체가 사라졌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분양 적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못지않게 서울 등 수도권 업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등록말소되거나 면허를 반납한 업체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업체는 527곳으로 전체의 64%에 이른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여건이 나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만큼 주택경기 침체가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을 닫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시장에는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온 건설업체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소업체는 물론 DㆍW사 등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중견 주택업체들도 M&A시장에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 업체를 사려는 매수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여느 때 같으면 높은 가격에 팔렸을 업체들마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매물로 나온 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중소 전문건설업체들이지만 조만간 중견 일반건설업체들도 시장에 대거 쏟아져나올 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특히 업계는 미분양이 계속 늘고 M&A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당수 업체들이 화의나 파산 등 막다른 코너에 몰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도 금융권을 통해 업계의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자금수요가 몰리는 연말께면 상당수 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몰릴 것"이라며 "자칫 정부가 규제완화에 뜸을 들일 경우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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