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트리플 초강세] 유럽계 자금 유입으로 강세 지속 예상 … "세자릿수 진입 시험대"

위안화까지 급격한 약세
1,000원 돌파 허용할 지 외환당국 대응수위 관심

원·달러 환율 1,020원이 붕괴된 9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화폐위변조 대응팀 직원이 100달러 지폐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이호재기자


원ㆍ달러 환율이 1,010원대에 진입하면서 원화 강세 속도에 대한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5월7일 이후 한 달간 방어했던 1,020원선을 뚫고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원ㆍ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010원대에 진입한 것은 지난 2008년 8월7일(1,016원50전) 이후 5년10개월 만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올 하반기 미국 테이퍼링 종료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완화 정책에 따라 유로캐리트레이드가 확대될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달러캐리트레이드 자금이 빠져나간 자리를 유럽계 자금이 손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환당국의 대응 수위도 관심을 모은다. 올 하반기 달러 강세 전환에 따른 자연스러운 원화 약세를 예상하는 상황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 하향 돌파를 허용할지가 관건이다.

◇한 달간 방어했던 1,020원 내줘=징검다리 연휴가 끝난 9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원30전 내린 1,016원20전에 마감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장 시작과 동시에 1,018원이 빠지니까 당국 개입으로 추정되는 강한 매수세가 들어왔다"며 "1,017원을 마지노선으로 계속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가 환율방어에서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진 '1,020원'선을 내준 것은 ECB의 통화정책과 미국의 5월 고용지표 탓이다. 5일(현지시간) ECB가 내놓은 기준금리 인하, 마이너스 예금금리 등 통화 완화 조치는 신흥국 통화에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미국이 14년 만에 신규 일자리가 4개월 연속 20만개 이상 늘고 실업률이 6.3%로 낮아졌다는 소식은 위험자산 선호 현상을 부추겼고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

외환시장에서는 ECB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풀린 자금이 신흥국 가운데 경제 여건이 양호한 한국에 쏠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유럽계 자금이 당장 팽창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적인 완화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주식시장에서도 이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난다"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라 유로캐리트레이드가 달러트레이드와 손바꿈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기관도 원화 환율 전망을 잇따라 조정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올 3ㆍ4분기 원ㆍ달러 환율 전망치를 기존 1,125원에서 1,020원으로, 4ㆍ4분기 전망치를 1,125원에서 1,000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내년 1ㆍ4분기, 2ㆍ4분기는 각각 980원, 960원이다. HSBC 역시 원ㆍ달러 환율 연말 전망치를 기존의 1,040원에서 1,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로부터 양질의 외국 자금이 한국에 꾸준히 유입되면서 구조적인 원화 강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 방어 부담 높아진 외환당국=원ㆍ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국내 수출업체가 가장 중요시하는 원ㆍ엔 환율도 급락하고 있다. 9일 원ㆍ엔 환율은 오후3시 현재 100엔당 991원61전까지 하락, 990원대를 간신히 지켰다.

원고엔저 현상이 심화되면서 수출 전선에는 그림자가 짙어지는 모습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이 그동안 엔저에 힘입어 철강·화학·소재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며 "이는 자동차·전자 부문과 직결되는 분야로 우리나라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원ㆍ위안화 환율도 부담스럽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원ㆍ위안 재정환율은 6일(현지시간) 현재 163.1774위안으로 2011년 7월 중순 이후 2년10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원화 강세에다 최근 위안화가 달러 대비 약세로 돌아서면서 이중으로 하락 압력을 받는 구조다. 이 연구위원은 "원ㆍ위안 환율 하락으로 중국 관광객 감소에 따른 관광수지 악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원화 강세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 외환당국은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통상 수출호황기로 분류되는 5~6월의 경우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이 많은데 외국인의 주식 매수까지 겹치면서 당국의 방어 부담이 더 커졌다. 환 개입에 대한 국제적 시선이 따가운 것도 부담스럽다. 5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609억1,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50억7,000만달러 증가하며 7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늘었다.

그렇다고 금리를 조정하기도 여의치 않다. 한국은행이 오는 12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하지만 원화 강세를 막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은은 2005~2008년 달러화와 엔화에 대한 원화 절상이 지금보다 가파르게 진행됐을 때도 금리를 인상했던 경험이 있다. 그나마 이주열 한은 총재의 구두 개입이 기대되지만 이 역시 원론적인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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