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노동법 개정, 최근의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에서 보면 당해 특별위원회의 안에서 지키려고 노력한 최소한의 개혁원칙은 마지막 순간 입법화의 과정에서 재벌, 재경원 등 힘을 가진 이해 당사자들의 로비와 압력에 의해 기형적인 형태의 타협안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반복되었다. 언제나 원칙 고수가 미덕은 아니겠으나 원칙없는 타협책은 십중팔구 기득권간의 나눠먹기라는 점, 따라서 기득권 세력간의 적당한 이익분점의 만연을 가져와 정작 진정한 개혁을 시도하려할 때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악덕으로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사실 개발독재시대에 형성된 기득권의 구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한 언제나 원칙을 지키는 일은 어렵고 정책의 딜레마적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다. 지난번 노동법 개정의 경우 개별노사관계는 대폭 완화, 개별노동계약과 관련하여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집단노사쪽은 풀어서 노조의 활동공간을 확대해 주는 것이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나 원칙의 입장에서 보나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기에는 대단히 힘든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국처럼 위계적이고 일 중심이 아니라 인맥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기업환경 하에서 필요에 따라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있는 개방된 노동시장은 존재할리 만무하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것을 버리고 「계약주의」로 나가자는 개혁안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맨몸으로 나가서 죽으라는 소리로 들릴 법하다. 한편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응수단도 없이 노조만 강화시켜 주면 어떻게 노동자를 관리하고 경영을 하느냐는 항변을 하게 된다. 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조활성화를 대칭적으로 실현시키는 일이 어려운 근본 원인은 개발연대에 심화된 대기업·중소기업의 이중구조, 위계적이고 동원주의적인 경영행태, 총수중심·인맥중심의 기업구조, 한마디로 재벌중심의 경제 운영에 있다.
다소 사소한 사안이라서 별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난달말 은행 소유경영구조 개편만해도 그렇다. 정부는 96년말 시행된 개정은행법을 다시 고쳐 기존 동일인 4%의 소유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5대재벌 및 기관투자가의 비상임이사회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학계에서는 재벌의 은행경영은 은행의 사금고화를 우려하고, 재벌은 주인없는 은행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입장을 보였다. 현실을 인정하는 한 관치금융의 대안은 「재벌금융」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금융과 산업의 분리라는 대원칙은 폐기되어야 한다. 하나의 딜레마적 상황이다. 일각에서 전문경영자에 의한 책임경영을 주장하나 정부와 재벌이라는 거대공룡의 개입과 외압 앞에서 과연 책임경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금융은 정부의 수많은 경제정책적·정치적 필요의 수단이었던 점, 주로 외형 불리기 경쟁에 몰두하는 대기업을 필두로 금융수요자 자신이 투명한 경영을 하고 객관적 사업전망에 기초한 신용대출을 받을 의사가 없다는 점 등 금융이 시장논리만으로 굴러가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장애가 존재한다. 결국 전형적인 타협안이 이번의 개편안이다. 많은 무원칙한 타협안이 그러하듯 이번 경우도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다. 즉 경영중심에서 배제된 재벌은 확보된 경영참여 기회를 자기이익 확보에만 이용하려 할 것이고 정부의 개입은 여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경영의 책임소재는 더욱 불투명해 진다.
원칙의 존중, 원칙에 입각한 타협, 그것은 강력한 개혁적 정치리더가 기득권세력의 압력을 유효히 차단할 때 가능하다. 경제에 정치논리가 침투하는 일은 좋지않다는 말도 일리가 있으나 대부분의 핵심문제가 개발독재과정에서 발생하여 확대 심화된 것인 만큼, 결자해지의 관점에서 정치가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가지 정치사안에 대해 지적하자면 차기 대권과 관련하여 최근 일각에서 논의되는 이런저런 형태의 권력 분점구상은 기득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이익을 적당히 나누어 갖자는 발상으로 극히 반개혁적임을 유의해야 한다.
□약력
▲56년생 ▲80년 서울대 경제학과졸 ▲89년 런던대 경제학박사 ▲국민대경제학부 부교수 ▲참여연대부설 참여사회연구소 경제분과장 ▲저서:자유주의 비판(풀빛 1996,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