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씨 자살' 도청수사에 변수되나

수사일정 조정 불가피…검찰은 "큰 틀에서 문제없다"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의 갑작스런 자살로 정점을 향해 치닫던 도청수사가 막판 변수를 만나게 됐다. 이씨가 국정원 차장으로 재직할 당시 발생한 국정원 도청정보 유출 등에 대한수사가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데다 정치권 등에서 자살 배경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을제기할 경우 해명하다보면 수사 일정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국정원에 의한 도청 수사 자체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약간의 일정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넉 달 가까이 진행돼 온 도청 수사는 2002년 대선 전 도청 문건 유출 사건과 1997년 대선에서 삼성의 불법자금이 여야 대선후보에 흘러들어갔다는 `안기부 X파일'관련 고발 사건을 남겨두고 있다. 검찰이 수사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이씨가 위 두 가지 사안과 거의 무관하다는 자체 판단 때문이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3차례 조사 결과 이씨가 도청 문건 유출에 개입하지 않은것으로 정리했으며 안기부 X파일 사건이 불거진 1997년에는 그가 국정원이 아닌 경찰에 재직했다. 도청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이미 중간 간부급 직원들의 진술과 불법 감청장비 활용 자료 등을 충분히 축적해놓은 상황이어서 이씨의 죽음이 수사 종료와 공소유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정황을 들어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이씨의 자살이 워낙 큰 충격파를 던져주는 사안인 만큼 향후 수사일정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비중있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애써 강조하고 있으나 신건 전원장의 구속에 이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정 정도 작용했다는 점도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신건씨가 15일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검찰에서 "(이번 사건은) 물증은 없고 말싸움 뿐"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주요 진술자의 한 명인 이씨가 갑작스레 숨진 것이 검찰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서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유서 내용에 따라 수사일정이 좌우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검찰이 정치권에서 불어오는 외풍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신건ㆍ임동원 전 원장의 구속 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던 김대중 전대통령측은 이씨의 자살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어서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반발이 극에 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씨의 갑작스런 사망에 따른 정치권 파문 등을 감안하면 도청문건 유출의혹과 관련해 당장 이번 주쯤으로 예상된 김영일ㆍ이부영 전 의원의 소환이 일정기간 미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신건ㆍ임동원 두 원장에 대한 공소제기도 구속 후 20일을 꽉 채운 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단 신병을 구속한 뒤 두 원장을 매일 검찰로 불러 이미 기소된 김은성전 차장과 함께 조사를 벌여왔으나 21일은 이씨 자살 사태 추이를 파악하는 데 주력,두 전 원장을 따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 또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강압수사 의혹에 대해서도 외부의 우려 섞인 시선을 일소한다는 의미에서 검찰이 지금까지의 수사 과정을 되짚어볼 예정이어서 도청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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