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뜸해진 한국경제 설명회

뉴욕 월가(街)를 찾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투자설명회(IR)가 뜸하다. 2004년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맘때쯤 이면 한국 정부는 외국 기업들의 공장설립과 직접투자(FDI) 유치를 위해, 대기업들은 해외투자기관의 자금유치를 위해 맨해튼 고급호텔을 빌려 대규모 설명회를 열었지만 올 들어서는 별다른 IR가 없는 상태다. 10년간의 장기불황 터널을 벗어나면서 경기회복 신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과 산요ㆍ가네보ㆍ다이에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 성공사례와 경영실적 개선을 소개하면서 월가 투자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3년 전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IR 장소로 자주 사용하는 저팬소사이어티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골드만삭스ㆍJP모건ㆍAIG 등 금융기관은 물론 대형 뮤추얼펀드 관계자들로 자리가 가득 차며 질의응답(Q&A) 시간에는 월가 투자자들이 마이크를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월가로 향했던 한국 기업들과 정부의 발걸음이 왜 갑자기 뜸해졌을까.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원화강세와 고유가로 수출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단 몸을 사리자’는 분위기도 원인(遠因)이겠지만 월가 투자자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경영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자신감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최근 월가 펀드매니저들을 만나보면 한국 기업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예전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의 경영투명성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가기에는 아직 멀었다’ ‘이사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등 여과되지 않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월가에서 한국 기업에만 투자하는 구조조정펀드 설립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는 한국 정부가 외국자본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 기업 인수에 나선 해외자본에 불법과 탈법행위가 있으면 당연히 국내법에 따라 엄단해야 하겠지만 몇 개 외국자본을 잡기 위해 외자유치라는 대의를 손상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북아 금융허브 달성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외자본과의 교감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경영투명성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고 정부도 차별 없는 해외자본 정책을 표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다시 월가에 IR 행사를 알리는 태극기를 휘날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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