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경쟁풍토 만들어 생산성 높여야 ['소프트 파워 코리아'를 향해]관료주의 탈피가 경쟁력의 동력 신경립 기자 klsin@sed.co.kr 관련기사 중앙정부 기능 이양통해 지방분권 구조 확립을 지난 1994년 12월 문민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세워 기존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했다. 1998년 2월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책임이 큰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위원회ㆍ예산청으로 쪼갰다. 그리고 2008년 새 정부에서는 재경부와 기획처 기능을 통합한 옛 경제기획원의 부활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해온 조직 형태와는 달리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여전히 규제와 비효율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는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의 합성어)라는 말이 관가에서 사라진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평가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운영성과는 55개국 가운데 49위. 2003년 33위에서 16계단이나 떨어진 상태다.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국정운영지수의 규제부문 점수도 2005년 0.77에서 2006년에는 0.70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개편을 하지만 정부의 문화행태나 의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며 “정부 거버넌스에 있어 바꾸기 쉬운 하드웨어적 조직개편보다는 소프트웨어적 변화관리를 우선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경직된 정부가 민간 발목 잡는다=명목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교역규모 세계 12위, 정보화지수 3위, 선박수주량 세계 1위,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기업혁신과 과학기술 수준은 각각 8위와 7위. 민간 부문에 초점을 맞춘 우리나라의 실력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정부 역량에 초점을 맞춘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민의 삶의 질 38위, 투명성지수 34위, 부패인식지수 43위, 경제자유지수 36위, 소득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 1인당 국민소득 세계 48위. 부정부패ㆍ규제ㆍ투명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국정운영지수는 올들어 전년 대비 줄줄이 하락했다. 그 결과 IMD가 매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전년보다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29위에 그쳤다. 싱가포르ㆍ홍콩ㆍ일본은 물론이고 중국ㆍ대만ㆍ말레이시아ㆍ인도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박 교수는 “인체에서 공무원은 등뼈와 갈비뼈, 민간 부문과 국민은 살과 근육을 구성한다고 볼 때 시스템이 잘 작동하려면 두 부분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부문에서 아무리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 해도 경직된 정부의 틀 아래에서는 경쟁력 향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손병두 서강대학교 총장은 “소프트파워란 결국 사람을 움직여 조직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발상을 전환하고 무한경쟁이 가능한 풍토를 만들어야 소프트파워가 발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총장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97년 빌 클린턴 대통령 재선의 동력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며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규제를 풀어 기존 산업에서 신산업으로 노동이 이동하도록 유연성을 준 것이 클린턴 정권에서의 정보기술(IT)산업 부흥과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서비스업이나 지식산업을 육성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부처들이 저마다 유사정책을 쏟아내면 막상 꼭 필요한 정책지원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소프트한 정부조직과 운영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관료 메커니즘에서 기업과 같은 지식행정 시스템으로=김 연구원은 “지금까지와 같은 관료적 메커니즘으로는 사회의 지식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며 “이제는 정부가 지식을 창출ㆍ공유ㆍ활용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지식행정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라고 말한다. 지식행정이란 지식사회를 설계해 지식을 창출, 전파하고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가치를 극대화하는 혁신행정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각계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정부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한국정책지식센터도 ‘정부 신뢰구축을 위한 지식관리의 주요 이슈와 발전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그동안 정부의 지식관리가 업무와 직접 연계되지 못하고 시스템 위주의 형식적 운영으로 조직성과 기여에 미흡했다”며 지식행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식활동에 호의적인 조직문화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한 지식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화와 토론, 자율적인 학습을 통해 파편적인 정보를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정부 내 통합된 지식자원 활용에서 나아가 국민 지식네트워크까지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손쉬운 실천과제는 정부 조직 내의 토론과 학습을 활성화해 창의력을 높이고 유용한 지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좌승희 경기개발원장은 “공무원은 모두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난데 그것을 올바로 쓸 수 있는 메커니즘이 형성돼 있지 않아 경쟁력을 낭비하고 있다”며 “효율성을 높이는 정부 혁신을 위해서는 코드 인사를 탈피하고 소신 있는 공무원들의 언로를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년 임기의 틀에서 벗어나야=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차기 정부는 비대한 정부 부문의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작은 정부 실현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숫자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 정부 변화의 흐름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부처 통폐합에도 가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기능에 대한 진단이 우선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부ㆍ준공공부문ㆍ민간이 잘하는 분야를 각각 진단해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재정비하고 핵심역량에서 벗어난 기능은 과감히 이전해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소프트웨어 혁신을 위한 공무원 선발방식의 개혁 필요성도 제기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혁신을 위해서는 유연한 정부 인사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며 성과급 요소 강화와 부처별 공무원 자율임용제, 고위공무원직의 개방형 임용 확대를 주장한다. 문제는 조직을 쪼개고 붙이는 하드웨어 개편에 비해 소프트웨어 혁신이 훨씬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 5년 중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2001년 대대적인 행정개혁을 단행한 일본에서도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관료제의 연장선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정문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은 “각계의 소프트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의 체질을 바꾸려면 2~3대에 거쳐 섭생을 개선해야 하듯이 정부 거버넌스의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데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력시간 : 2008/01/03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