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저평가 통화'로 낙인찍었던 중국 위안화에 대해 "더 이상 저평가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위안화가 기축통화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문턱을 낮췄다. 이에 따라 국제 투자가들이 앞으로 국제적 위상이 한결 높아질 위안화 자산에 대거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IMF의 이번 평가 덕분에 앞으로 5년간 1조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중국 자산에 몰려들 것으로 내다봤다고 블룸버그통신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앞서 이날 IMF는 중국 경제 점검을 위해 개최한 연례회의에서 데이비드 립턴 부총재가 "과거 위안화 저평가는 (전 세계에) 커다란 경상수지 불균형을 초래하는 요인이었으나 지난해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게 평가절상돼 (위안화) 환율은 더 이상 저평가가 아닌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립턴 부총재의 이번 발언은 위안화가 매우 저평가돼 있다던 그간의 IMF 입장을 뒤집은 것은 물론 미국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환율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준 셈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IMF의 평가를 계기로 위안화 위상이 올라가고 점진적인 가치 상승도 예상된다며 글로벌 자산이 위안화로 대거 옮겨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악사인베스트매니저스는 이날 전 세계 보유외환 11조6,000억달러 중 10%가량이 위안화로 편입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농업은행 산하 국제증권 부문의 홍콩 소재 바니램리서치 공동대표도 블룸버그에 "IMF의 평가는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IMF는 지난 2004년 연례회의 당시까지만 해도 위안화가 저평가됐다는 학계와 시장 분석가들의 지적에 대해 "위안화가 매우 저평가됐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중립적인 견해를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강경한 입장으로 태도를 바꾸며 위안화 저평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지난해 연례보고서에서도 IMF는 "위안화가 5~10% 정도 저평가됐다"며 중국에 통화 평가절상을 압박했다.
이번에 IMF가 기존의 압박을 중단하고 위안화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 것은 그간 중국이 외환제도 개혁으로 적정 시장환율을 반영하려고 노력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년 전 (관리변동환율제 도입으로) 위안화 환율이 소폭 상향 조정되도록 허용된 후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25% 올랐다"고 소개했다. 대신 IMF는 중국에 보다 강력한 외환시장 개혁을 요구했다. 립턴 부총재는 "중국이 2~3년 내 변동환율을 실효성 있게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안화를 기축통화 중 하나인 IMF 특별인출권(SDR) 구성통화로 편입시키려는 중국 당국의 관심에 대해서도 IMF는 "환영한다"며 "이와 관련해 중국 당국과 긴밀히 작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SDR 편입은 위안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공인받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이번 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재무장관회의에서 위안화의 SDR 편입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IMF의 최대주주인 미국이 중국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군사·외교부문은 물론이고 경제 부문에서도 급성장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 경제전문가의 말을 빌려 위안화의 SDR 편입이 "단순히 기술적 측면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정치적인 문제"라며 미국 정부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문제임을 시사했다.
한편 IMF가 중국의 '저평가' 낙인을 지워줌에 따라 그동안 중국을 향하던 미국의 통화절상 압박이 우리나라 등 다른 신흥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미국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문제를 놓고 환율조작 방지 조항을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