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예상을 깨고 11개 부처 장관 내정자를 일괄 발표했다. 여야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정부조직법안 개정과 상관없는 부처의 장관 내정자만 발표하거나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을 먼저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빗나갔다. 이번 인선에는 수긍할 대목이 적지 않다. 1주일 뒤 대통령에 취임하면 대선 공약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읽혀진다.
그러나 마냥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여권은 야당의 주장 가운데 합리적인 부분을 반영해 당초 안을 수정하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고 국회를 존중하는 국정을 펼치겠다는 박 당선인의 약속을 실천하는 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도 여야가 협상을 통해 통일부ㆍ여성부를 존치하기로 하는 등 인수위안을 수정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15일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조직 개편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위원장이 협상팀에 재량권을 달라고 요청하자 "(협상팀에) 전화를 걸겠다"고 말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여야 합의 전에 미래창조과학부 등 쟁점 부처 장관 내정자까지 일괄 발표함으로써 협조 요청은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는 오해를 사게 됐다.
'대선 공약 수정 불가'를 강조해온 박 당선인은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도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고 거듭 촉구, 여야 협상팀의 입지를 좁혀놓았다. 오죽하면 민주당 원내대표가 "브레이크와 가이드라인을 풀어 협상권한을 협상팀에 위임해달라"고 요청했을까. 여야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11개 부처 장관 내정자 일괄 발표는 야당에 대한 백기투항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야당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당선인이 국정을 이끌어갈 구상을 담은 정부조직개편안을 가급적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박 당선인도 협상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와 소통의 정치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새 정부 초기 여야의 협력이 5년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