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세상] 부패 매국노? 나라 구한 외교가? 리훙장 실체는

■리훙장 평전(량치차오 지음, 프리스마 펴냄)
청나라 혼란기 40년간 실권 장악
정치·군사·외교가로서의 삶 조명


1896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솔즈베리(왼쪽) 영국수상, 쿠르존 경(Lord Curzon·오른쪽)과 자리를 함께 한 리훙장.

리훙장(李鴻章ㆍ1823~1901)은 19세기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장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 말기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의 길을 걸으면서 40여 년이나 실권을 장악했다. 19세기 중국 근대사의 거의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할 정도로 중국 근대사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의 난을 진압한 뒤 중앙 정계에 진출해 스승 쩡궈판과 함께 서양 문물을 통해 중국을 근대화하려 했던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이끌었다. 쩡궈판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청 정부의 최고 정치가이자 외교가로서 외국 열강들을 상대로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리훙장은 한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다. 리훙장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며 임오군란 수습 과정부터 실질적인 간섭정책으로 전환했고 위안스카이(袁世凱)를 파견해 조선 정부의 내정 및 외교에 적극적으로 간섭했다. 그러나 조선을 두고 일본과 대결했던 청일전쟁 패배 후 그 동안 쌓아온 군사적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리홍장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중국 근대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쓴 리훙장에 관한 평전이다. 량치차오는 자신의 정적(政敵)이기도 했던 리훙장이 1901년에 죽자 그 해에 이 책을 썼다.

19세기 중국 근대사를 제대로 알려면 리훙장이라는 인물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청일전쟁 패배와 굴욕적인 조약체결의 책임을 들어 리훙장을 매국노, 한간(漢奸), 부정부패자라고 비난했다. 반면 1896년 빌헬름 2세는 독일을 방문한 리훙장에게 '동양의 비스마르크'라는 수식어를 붙여 추켜세웠다. 또 개혁ㆍ개방을 거쳐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최근 양무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리훙장을 태평천국의 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열강을 견제하려 했던 외교가로 재평가하고 있다.

저자 량치차오는 이 책에서 리훙장이 살았던 19세기 청나라의 정국과 그 속에서 리훙장이 처한 위치, 외국 열강들이 몰려들고 반란이 끝없이 이어지던 혼란기 중국의 시대적 사건들, 그리고 군사가ㆍ정치가ㆍ외교가로서 리훙장의 삶 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 본다. 저자의 리훙장에 대한 평가는 "시대가 만든 영웅일 뿐, 시대를 만든 영웅은 아니었다"는 말로 압축된다. 리훙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연민들도 기록했다.

또 리훙장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기 위해 곽광, 제갈량, 곽자의, 왕안석, 진회, 쩡궈판, 쭤쭝탕, 리슈청, 장즈퉁, 위안스카이,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 글래드스턴, 티에르, 이이 나오스케, 이토 히로부미 등 16명과 리훙장을 비교해 설명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도대체 리훙장은 어떤 인물일까. 저자는 두 가지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의 단점은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감히 파격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그의 장점은 '고생을 피하지 않고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훙장의 공(功)과 과(過)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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