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멜린다 데이비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 소비자들은 가장 빈곤한 티베트 국민들보다 과연 행복한가.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한 주관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 국민들 스스로가 911 테러와 잇따른 중동국가들과의 대립, 빈부격차와 인종간 갈등으로 스스로의 삶을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욕망의 진화(the New Culture of Desire)`는 마케팅 차원에서 이러한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 긴장과 갈등에 주목하면서 미래의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은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책이다. 미국의 컨설팅업체인 넥스트그룹이 지난 96년부터 진행해 온 `어떤 욕망이 소비를 좌우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론인 이 책은 물질적 진화에 지친 미래의 소비자는 반드시 정신적 위안을 찾게 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저자인 멜린다 데이비스(Melinda Davis)는 넥스트그룹의 CEO이자 미래학자로서 미래의 시장 개척자는 소비자에게 상품의 기능과 효용이라는 전통적인 가치외에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는 치유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기업들은 이제 위험에서 벗어나 영혼의 안식처를 찾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갈망하며 작은 커뮤니티를 결성해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
저자는 AT&T, 머크, 디아지오, P&G, 유니레버 등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욕망은 진화하고 있는데 마케팅 기법은 아직도 50~6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감정과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채 제품의 성능이나 가격만을 가지고 새롭고 좋은 제품이라고 소비자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미래의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21세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현실세계의 죽음
▲병든 마음의 치료
▲공동체에서의 안식
▲자기흔적 남기기
▲미로에서 길찾기 등 다섯가지 트렌드로 정리하고 마케터는 이런 추세에 입각한 상품개발과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예컨데 최근에 점차 늘고 있는 온라인 동호인 모임이 쉽사리 오프라인의 모임으로 연결되는 것이나 아바타나 자신을 형상화한 모델을 활용,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려는 시도, 밀리터리 룩이나 빅사이즈 등 과장된 디자인의 의류나 액세서리를 선호하는 경향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또 자동항법장치(GPS시스템)의 구매나 스타 연예인의 추종, 선ㆍ명상ㆍ요가 등을 통해 종교적 지도자에 귀속하려는 경향도 바로 `미로에서 길찾기`의 일환으로 본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읽다 보면 왜 최근에 틱낫한 열풍이 불고, 인터넷상에서 사이버 머니가 급속히 퍼지고, 가짜라도 명품을 구입하려 애를 쓰는지 등의 사회적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좁게는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찾고 있지만 이 시대의 사회문화적 조류를 폭넓게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