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11월15일 ‘주택담보대출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은행권으로 발송됐다.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너도나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부터 사고 보자’는 투기심리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은행권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해 상환능력이 부족한 고객에 대해서는 대출을 제한했다. 당연히 은행권과 상당수 대출 수요자들로부터 불만과 불평이 쏟아졌다.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시장의 볼멘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택담보대출 억제 정책을 밀어붙였다. 지금 당장은 욕을 먹을지 몰라도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주택경기 억제정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했다. 결코 단기적인 평가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야기된 미국 부동산경기 침체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택가격의 10~20%에 불과한 돈만 갖고 있어도 집을 살 수 있었다. 은행들이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도 ‘묻지마 대출’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부동산 경기냉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깊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고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 가운데 상당수는 대규모 적자로 곧 쓰러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 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2006년에 선제적으로 부동산투기 억제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는 이미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라며 “한국 부동산경기가 폭락하지 않고 연착륙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미리 부동산 거품의 소지를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정책 당국은 긴 안목으로 경제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에 유혹되기 쉽다. 당장은 힘들지만 먼 미래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과거 금융당국의 선견지명과 뚝심이 더욱 빛을 발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