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질병으로 일어나는 소득 감소와 중단에 일차적으로 대처하여 일정한 소득보장을 담보하는 게 공적의료보험이다.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의 부담을 조금 경감시키는 게 아니라 고액 진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을 방지하자는 게 본래 취지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집안에 병자가 생겨 가계가 파탄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이유는 암 같은 질병의 경우 본인 부담이 총진료비의 절반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공보험의 보장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다.
보장성 약화등 사회 악영향 커
한국 의료보험이 본격 시행된 것은 지난 77년이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단기간에 전국민의료보험이 달성됐고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높은 수준에 있으며, 보장범위나 질 또한 꾸준히 강화되어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 형식적 발전에 치중해 보장성 강화를 게을리하였다거나, 진료보수 통제가 의료보험비 적용의 진료(첨단장비를 이용한 검사진료 등)에 치중하게 하는 왜곡된 의료행태를 조장해 결과적으로 공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최근 민간의료보험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심히 우려되는 일로, 민간보험의 건강보험 명칭 사용에 대한 규제를 포함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민간보험의 팽창은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소비가 양분되어 사회통합을 해치며, 무엇보다 국민의료비 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민간보험 옹호자들은 민간보험으로 의료기술이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마음먹기에 따라 발전하는 게 아닐 뿐더러 공보험체제에서도 한국의 의료기술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오지 않았는가. 또한 민간보험이 공보험을 보완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공보험이 아직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공보험 발전에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해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었다고는 하나, 솔직히 회원국 평균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고 의료수준도 예외는 아니다. 회원국과 비교해볼 때 단지 CT나 MRI 등 첨단장비 보유면에서만 톱수준일 뿐 공공의료 비율이나 본인 부담 등 질적인 면에서는 최저이다.
2000년 세계보건기구(WTO)는 세계 각국의 의료제도를 평가해 순위를 공표한 적이 있다. 한국은 191개국 중 35위였다. 1인당 의료비 지출은 31위였는데 비용부담의 형평성은 53위였다. 의료제도의 전체적 수준에 비해 저소득자의 부담이 무겁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1인당 의료비 지출이 세계 1위였지만 의료제도는 15위 수준이었고, 특히 의료재원 부담의 공평성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떨어지는 54위를 기록했다. 영국이나 스웨덴 등 공공의료가 확립된 국가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위는 일본이며 1인당 의료지출은 13위였다. 이러한 사실은 의료비 지출의 과다가 의료수준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보험 확충에 노력 집중을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적 모델이다. 미국은 의료 의존율과 보험비적용자비율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2003년의 OECD 공식통계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총의료비 지출에서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불과해 예시된 23개국 중 최하위였다. 하지만 미국은 국민소득이 높다. 국민소득이 현격한 한국 상황에서 민간의료보험을 확충하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방향이다.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역시 생명체에 다름 아니다. 탄생이 있고 성장과 뿌리내림이 있으며 쇠퇴도 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노력해왔는가는 지금 우리 의료제도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미래의 한국의료제도가 어떤 모습일 것인가 역시 지금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 공보험은 완성 직전의 단계이다. 이를 보다 완전하게 만드는 데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