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먼저 제안한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근 조성된 긴장 국면에 대한 해결 방안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폭넓게 의견이 교환됐다는 점이다.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긴장 완화는 물론 경제협력·민생·환경·문화 등 소프트한 분야에서도 양측이 해법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5·24 제재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등이 핵심 의제로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北 '대통로', 南 '소통로' 모두 협상 안건=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1월 신년사에서 제안한 '대통로' 방안과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대북정책인 민생·환경·문화 등 '3대 소통로' 구상이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라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23일 새벽 브리핑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며 이 같은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관건은 북한이 천안함 폭침, 지뢰 도발, 서부전선 포격 도발 등 일련의 무력도발행위에 대해 얼마만큼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가에 달려 있다. 북한은 줄기차게 5·24 경제제재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이 천안함 폭침 등 도발행위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이 사과하지 않거나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도발-대화 제스처-또 다른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5·24 조치 해제·이산가족 상봉도 논의한 듯=북한은 이번 협상에서 무력도발행위에 대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유감을 표명하면서 경제적인 실익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남측에 지난 201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5·24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는 것을 반대급부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개발과 무력도발에 대해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교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남한과의 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에 따라서는 '통 큰 경협 보따리'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제안한 인도적 차원에서의 이산가족 상봉과 긴장 완화를 위한 DMZ 평화공원 조성도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최후 통첩을 선언하는 가운데서도 개성공단 조업을 중단하지 않은 것에서도 남북경협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