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율성 최대보장·물류선진화 서둘러야국내 제조업의 입지 축소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제조업체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취업자들이 기피하고 돈줄은 막히고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3중고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 97년 IMF위기 이후에는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 98년 하반기부터는 정보통신(IT)화의 급물결 속에 제조업은 '굴뚝산업'이라는 지칭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정부나 사회적 관심대상에서 우선순위가 밀렸다.
지난해 중반 이후 인터넷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IT산업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제조업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분위기지만 아직도 인적ㆍ물적 자원의 제조업 지원은 여전히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이번 통계청ㆍ한은 자료에서 나타났다.
정부는 중국의 빠른 성장 등 국내 제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소가 급격히 커짐에 따라 국내 전통산업의 IT화 등 경쟁력 강화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의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제조업
국내 제조업은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내적으로는 경기침체의 여파속에 구조조정이라는 시련을 겪고 있다. 여기에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시장 축소에다 핵심 경쟁력 약화로 시달리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상위 5위권에 드는 제품의 수는 94년 555개에서 99년 482개로 줄어들었다. 경쟁력 1위 제품수도 94년 82개에서 97년 69개로 크게 줄었다가 99년 76개로 소폭 회복에 그쳤다.
한국ㆍ일본ㆍ중국 등 동북아 3개국의 제품경쟁력을 비교해본 결과 우리가 일본과 중국에 우위를 보인 품목 비중은 각각 24%, 3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금융지원 기피
통계청과 한국은행 자료는 취업인력과 은행권이 제조업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분류 업종 중 농림어업과 제조업만 지난해 3월과 비교한 올 3월의 취업자수가 줄어들었다.
취업희망자들의 제조업 기피경향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정보통신화의 급물결은 금융권의 제조업 지원위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전망과 대책
정부와 민간은 모두 산업정책으로서 거시적인 수단을 활용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미시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단에 있어서는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한성택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가격경쟁력에 의지해 우리의 설자리를 확보하던 방향은 중국의 엄청난 추적 등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곤란하다"며 "결국 전통제조업의 IT화, 기업간거래(B2B) 등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생산ㆍ마케팅ㆍ물류의 선진화만이 살길"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1만개 중소기업 IT화 등 관련정책을 수립,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정부가 말로는 마이크로 정책을 강조한다고 하면서도 획일적인 기업규제로 '붕어빵'식의 경쟁력 없는 기업만 양산한다고 비판한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원장은 "최근 국내 제조업의 어려움은 내부적인 원인에도 이유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대외여건의 악화에 따른 것"이라며 "따라서 정부는 기업들이 이 같은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기업의 변신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이는 구체적으로 기업이 최고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분사, 기업 인수ㆍ합병(M&A), 축소 등 기업의 경영을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좌 원장은 "그러나 정부는 200% 부채비율 감축 등 획일적인 기준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며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은 기업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나아갈 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의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