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권자들은 이번 일요일(21일) 대선 1차 투표에서 16명의 대선 출마자 가운데 차기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을 결정해야 한다.입후보자는 많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현 프랑스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와 리오넬 조스팽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을 고르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현재 부패에 대한 비난으로 얼룩져 있고 총리는 안일하게 탁상공론만 일삼고 있다. 도무지 찍어줄 만한 마땅한 후보가 없다.
많은 유권자들은 선거권 행사를 포기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음으로써, 아니면 전혀 가능성 없는 후보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그들의 거부감을 표시할 것이다.
이번 선거 캠페인에서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새로운 이상 제시와 참신한 생각들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발전됐다고 자부해 온 프랑스가 안일함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 과정에서 방어적이며 내향적이고, 보수적인 현재 프랑스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은 이번 선거에서 제외되고 있다. 유럽의 미래는 논의조차 안되고 있으며, 펀더멘털 개혁에 대한 것은 이슈에서 빠져 있다.
이런 현상은 사회 안정과 기존 질서의 유지를 바라는 프랑스 유권자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범죄 예방이다.
기성 법률 체제와 질서에 대한 우려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정을 강조하는 현 정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스팽 총리도 처음엔 보다 근대적인 프랑스 건설을 기치로 내걸며 개혁쪽으로 치우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평등에 중심을 둔 좌파적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총리 모두 이번 선거에서 기회를 잡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새로운 시스템에 돌릴 수 있다.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를 같이 치름으로써 각각의 선거는 다른 선거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1차 투표의 승자들은 2차 투표를 위해 패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 유권자들은 변덕스럽다. 1차 투표에서 트로츠키파의 후보자를 지지하는 여섯 명의 유권자 가운데 한 사람은 다음 투표에서 자크 시라크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해 볼만한 일은 보호주의 경제와 비교한 시장경제의 장점이나 유럽연합(EU)에서 프랑스의 역할 등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이다. 법 체제와 질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제칠 수 있는 이슈는 아니다.
유권자들이 1차 투표에서 투표권을 포기하고 집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라크와 죠스팽을 깨우기 위한 모닝 콜이다.
안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권자들에게 더 많은 비전과 영감, 그리고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제시해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