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칼럼/11월 22일] 복지체제, 고용친화적 가야

정치권에서는 '보편적 복지'니 '70% 복지'니 하면서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따라 사회적으로 복지수요가 증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까닭에 정치권이 이를 적극 수용하는 것은 일단 환영하고 볼 일이다.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사회적 위험에 처한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촘촘한 안전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반응은 정치권의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국민들은 복지에 대해 기본상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을 염두에 두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선심성' 복지공약을 우려하는 수준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부유세로 때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꿰뚫고 있다. 구미 선진국의 복지개혁에 대해서도 웬만큼은 다 알고 있다. 아직 미흡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틀을 갖추었다. 4대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호제 및 긴급복지지원제, 기초노령연금제, 노인장기요양보험, 근로장려세제 등이 실직ㆍ질병ㆍ고령ㆍ산업재해 등과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각 제도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한 틀을 갖추는 것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지속 가능한 복지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복지수준을 높여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복지 후발자로서의 이익을 최대한 살려 고용친화적 복지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수급자만이 아니라 차상위 계층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되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도록 하는 고용친화적 복지를 우리 복지제도의 기본 축으로 삼아야 한다. 실업급여나 고용서비스 등을 활동화(activation)와 연계함으로써 취업으로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잡은 물고기를 나눠 주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물고기를 잡도록 지원하거나 강제하는 것이다. 이는 복지수급자의 인간적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지라고 할 수 있다. 고용친화적 복지를 통해 현재 60%를 밑도는 고용률을 국민소득 4만달러 국가 수준인 70%로 높인다면 약 400만여명이 더 일자리를 갖게 되고 그만큼 재정부담은 경감될 것이다. 경감된 재원으로 근로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지원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친화적 복지체제는 단순한 빈곤 대책의 차원을 넘어 중산층을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중산층 가구의 비중과 이들의 소득 점유율은 사회 안정 및 통합의 중요한 변수이므로 성숙한 선진사회로 갈수록 중요성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고용친화적 복지에 있어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직업능력개발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다. 취업의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일에 대한 보람도 낮고 일자리도 저임금의 비생산적인 경우가 많다. 그동안의 공공근로는 이러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며 이 경우 복지가 오히려 근로빈곤층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서의 직업능력개발은 이러한 문제를 크게 완화시켜준다. 개인의 적성과 희망을 고려해 능력 개발과 숙련 향상의 기회를 부여하고 능력과 숙련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에 취업하게 함으로써 일자리의 생산성과 개인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여주는 것이다. 직업능력개발정책은 복지수급자만이 아니라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되 특히 비정규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영세자영업자 근로자 등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 낮고 직업생애가 짧아서 결국에는 복지의존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복지수급자로 전락할 가능성을 줄이고 노동의 이동성과 질을 제고시켜 사회 전체의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직업능력개발이야말로 선진 복지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예방적ㆍ투자적 복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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