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공룡 IBM이 LG전자와 NHN 등 국내 대기업에 자사의 특허 매입을 제안하는 등 특허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안이 특허 매각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소송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IBM은 또 1월 라이선스(특허료)를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던 국내 중소ㆍ중견 반도체 기업에 침해가능 특허를 선별해 최근 다시 메일을 보내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IBM은 지난달 중순 미국 본사 특허담당 직원이 직접 LG전자를 찾아가 자사 특허 매입의사를 타진하고 NHN 등에는 특허 리스트가 담긴 메일을 보내 특허 매입을 요청했다. 한 특허 전문가는 "IBM이 자금여력이 있다고 판단한 LG전자와 포털업체 NHN 등에 자사 특허를 매각하겠다고 찾아가고 메일을 보냈다"며 "그러나 양측 모두 매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한 변리사는 "특허침해의 배상액은 침해 인지시점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며 "특허소송에 앞서 침해 인지시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메일을 보내거나 방문하기도 하는 만큼 IBM의 특허 매각 제의를 소송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IBM은 국내 대기업에 특허 매입을 제안하는 한편 중소ㆍ중견업체에는 라이선싱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한 중견업체 관계자는 "IBM이 특허 60여개를 간추려 라이선스를 하라고 메일을 보내왔다"며 "일단 특허분석을 하면서 신중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특허 전문가들은 IBM이 관련업체에 먼저 메일을 보낸 후 2단계로 공격 대상을 선정해 집중적인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특허소송 변호사는 "아무리 큰 기업도 여러 곳과 동시에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 크기 때문에 한두 곳을 골라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쓴다"며 "첫 다툼의 결과가 다른 업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업계 공동으로 특허 무효소송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업계에서는 IBM의 특허 사업화 전략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라이선스 중심에서 '대기업은 매각, 중소ㆍ중견기업은 라이선스'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심충섭 지해특허 대표변리사는 "IBM은 지난 수십년간 대기업을 대상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했기 때문에 추가로 라이선스를 할 곳이 많지 않다"며 "반면 지금까지 소외돼온 중소ㆍ중견기업은 상대적으로 라이선스할 곳이 많은 만큼 전략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IBM이 보유한 특허는 이미 라이선스 계약을 많이 한데다 기술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며 IBM의 특허가치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특허가치평가사인 오션토모는 "보유특허 건수에서는 IBM이 세계 1위지만 보유특허의 가치는 8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IBM의 정보기술(IT) 서비스 관련특허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게임ㆍ소프트웨어 특허에 비해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특허관리 전문회사 변리사는 "세상이 PC 중심에서 모바일로 옮아가고 빅데이터ㆍ소셜 등 환경도 빠르게 변하면서 IBM이 설 자리를 못 찾고 있다"며 "특허공룡 IBM이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라이선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 미국 특허 전문가는 "특허 건수가 많다고 특허가치가 꼭 높은 것은 아니다"라며 "IBM은 보유한 특허 건수만큼 효율적인 사업화 실적을 얻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IBM 측은 "국내 기업에 안부 메일을 보낸 것은 맞지만 협박편지를 보낸 적은 없다"고 부인했고 IBM의 아시아 IP총괄 담당자는 "한국 기업에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메일을 보낸 담당자가 있다면 문책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IBM은 이에 대해 즉각적인 답변을 피했다.
한편 특허청은 이달 중순 주요 업종별 단체 간 지적재산권 분쟁에 관한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중소ㆍ중견기업들이 분쟁정보를 공유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해 공동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