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유영선 레드페이스 대표

브랜드와 함께 인생역전… 뚝심으로 일궈냈죠
산악인 입소문으로만 46년간 제품 팔아
매출 1260억 아웃도어 최장수 브랜드
백화점 대신 철저히 마트·가두점 공략
정우성 광고모델 영입은 고객 감사 차원



'우린 노스페이스 짝퉁 아냐' 정우성을 보라
[CEO&Story] 유영선 레드페이스 대표브랜드와 함께 인생역전… 뚝심으로 일궈냈죠산악인 입소문으로만 46년간 제품 팔아매출 1260억 아웃도어 최장수 브랜드백화점 대신 철저히 마트·가두점 공략정우성 광고모델 영입은 고객 감사 차원

심희정기자 yvette@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레드페이스는 지난 1966년에 탄생한 국내 최장수 아웃도어 브랜드이다. 지난해 1,260억원의 매출을 올려 노스페이스ㆍ코오롱스포츠ㆍK2 등에 이은 업계 6위를 지키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간혹 노스페이스의 '짝퉁' 브랜드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가 국내 시장을 점령하기 전 1세대 산악인들에게는 오랜 전통에 걸맞게 낯익은 브랜드다. 비슷한 이름의 노스페이스가 국내에 들어온 때가 1997년이니 국내에서는 레드페이스가 31년이나 앞서 태어난 셈이다.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대중에 깊숙이 파고들어온 노스페이스와 달리 레드페이스는 지금껏 '베일 작전'을 펴왔다. 남들이 다 한다는 그 흔하디 흔한 스타 모델도 안 썼고 지면 광고도 안 했다. 베일에 싸인 브랜드로 광고ㆍ홍보 모든 것을 차단한 덕분에 견제도 없었다. 순전히 일찌감치 인연을 맺은 1세대 산악인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업계 6위를 지켜왔다.

강남구 역삼동 레드페이스 본사에서 만난 유영선(54ㆍ사진) 사장은 "이제부터 레드페이스를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여타 아웃도어 브랜드와는 다른 독자적인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앞으로 행진'이라는 공격이 아닌 '내실 경영'이라는 수성 구호다.

레드페이스는 그 일환으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탤런트 정우성을 모델로 영입했다. 연예인 광고 모델 섭외 이유도 다른 브랜드와 역행한다. 유 사장은 "신규 고객 창출이 목적은 아니다"라며 "레드페이스를 이용해준 고객들이 '우리가 입는 브랜드가 광고를 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기존 고객에게 감사 차원에서 광고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역사성을 강조한 광고 카피를 통해 아웃도어 정통 브랜드임을 만천하에 공표한다는 전략이다.

레드페이스의 마케팅 전략도 경쟁 브랜드와는 정반대다. 백화점 입점 대신 철저히 마트와 가두점을 공략한다. 높은 백화점 수수료를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쓰겠다는 것. 유명 브랜드와 비슷한 원단이면 가격이 20~30%가량 싼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지만 도심에서 입어도 무방하게 만들겠다는 방침은 그대로 간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잃으면 저무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에서다.

최근 아웃도어 시장에서 핫 트렌드는 캠핑이지만 레드페이스는 당분간 캠핑 제품도 팔지 않을 방침이다. 유 사장은 "너도나도 캠핑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우리는 투자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아래 그동안 판매하던 캠핑 제품 판매를 올해 접었다"면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지 돈이 된다고 무작정 사업을 벌일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브랜드의 경영 방침과는 반대로 가는 레드페이스의 뚝심 마케팅은 유 사장의 캐릭터와 똑 닮아 있다.

유 사장이 레드페이스를 만나게 된 것은 2000년. 당시 34년 역사의 레드페이스는 1991년 최종 부도 처리로 10년간 '죽은' 브랜드였다. 자기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려던 유 사장에게 당시 장경신 레드페이스 사장이 상표권 인수를 제안했고 이미 일본 여행을 통해 아웃도어 의류 트렌드를 미리 감지한 그는 확신을 갖고 이를 받아들였다. 유 사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웃도어 시장은 식료품 구멍가게보다 더 낙후돼 있어 정찰제도 없이 주먹구구식이었다. 당시 등산복 산업 총 매출액이 2,000억원도 안됐다. 산이 75%나 되는 한국도 일본처럼 등산ㆍ레저 등 아웃도어 열풍이 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인수할 당시 매출이 제로(0)였던 레드페이스는 첫해 20억원을 찍더니 올해 매출 예상액은 지난해보다 30% 가까이 오른 1,60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고 유 사장이 오랜 전통의 레드페이스 인수 기회를 운 좋게 저절로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사업가를 꿈꿔온 그는 대학 졸업 후 1982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나이키 스포츠 브랜드가 한창 인기를 끌기 시작한 당시 스포츠 브랜드 산업이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는 직감으로 아디다스 대리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감은 적중했다. 당시 월 수익 1,000만원은 거뜬히 벌어들였다.

그러나 도깨비 방망이가 항상 그에 곁에 있지는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불운은 삽시간에 그의 성공과 행복을 앗아갔다. 1992년 중국의 문호 개방과 함께 중국에서 생산한 '보스토크'라는 스포츠 브랜드를 만든 게 화근이었다. 불량 제품의 양산에서 시작된 불운은 1년 사이에 물류 창고 화재, 새로 이전한 창고의 홍수 등 악재로 이어지면서 그는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됐다. 그동안의 신용 덕분에 은행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면했지만 지옥 체험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20년 전 당시 빚은 10억원. 재고를 털기 위해 길거리 잡화 장사 등 안 해본 게 없었다. 직원은 물론 친구ㆍ가족도 모두 떠났다. 그때 평생의 눈물을 다 쏟아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가 터지기도 전에 전 이미 IMF 위기 이상의 고통을 맛봤습니다. 암흑의 터널을 빠져 나오기 직전에는 1,000만원이 필요했는데 돈을 구해올 데가 없어서 병원에 갔다가 화장실에 붙은 '장기 판매' 스티커를 보고 장기를 팔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저에게 사업은 인생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한다는 것은 없었거든요.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가 도와준 덕분에 최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1996년 빚을 다 털어내고 자유의 몸이 됐다.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던 나머지 그는 항상 외로웠다. 2000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1990년 후반까지 유 사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2남 1녀 가운데 다른 형제들은 서울대를 나와 정부 기관과 학계에 몸담은 데 비해 그는 언제나 '돌연변이'로 취급됐다. 그러나 유 사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그동안 산전수전을 겪은 아들을 독대하고는 '네가 끝까지 내 뜻을 거스르고 집을 뛰쳐나가 사업을 한 것이 어쩌면 잘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씀하셨다"고 떠올렸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유사장은 장남인 제원(28)씨가 레드페이스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레드페이스의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유 사장의 계획에 따라 제원씨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레드페이스 역시 종국에는 중국 진출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그는 "아들이 다른 직원들보다 장점이 더 많다면 회사를 물려받을 권한을 줄 수 있지만 본인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라며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업은 인생 전부를 걸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 사장은 3년 내에 아웃도어 업계 5위를 자신하고 있으며 최종 목표는 국내 1위다.

그는 "우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이다. 기획에서 실현 단계까지 3개월이면 끝난다. 어느 브랜드보다도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게 장점이다. 트렌드도 앞서가고 빨리 만들어낸다. 지금보다 6개월 정도 기획을 앞당겨볼 생각이다. 이런 역량에 힘입어 10년 안에 1위가 가능하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온갖 역경을 극복한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보니 그의 꿈이 꿈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유영선 대표는

유영선 레드페이스 사장은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국내 최장수 아웃도어 브랜드 '레드페이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지난 1966년 탄생한 레드페이스가 1991년 부도로 간판을 내린 지 10여년 만인 2000년 상표권을 인수하며 레드페이스를 부활시켰다. 젊은 시절 한때 손대는 사업마다 불처럼 일어나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던 그였지만 최악의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서 레드페이스와 함께 부활했다. 브랜드와 함께 인생 역전에 성공한 경영인답게 그의 모토는 '경영=인생'이다.







고품질 원단 앞세워 전국 341개 매장 보유
■ 레드페이스는
심희정기자

전국 341개 매장을 보유한 레드페이스는 지난 3월 초 350억원에 매입한 강남구 역삼동 차병원 사거리에 위치한 신사옥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가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 레드페이스가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데는 튼튼한 제품력이 자리하고 있다.

레드페이스의 공장은 부산과 베트남ㆍ중국에 있다. 신발류와 용품은 부산 레드페이스 자체 공장에서 전량 생산하는데 신발류 소재는 100% 국산이며 용품의 경우 일부 일본ㆍ미국산 자재를 가져다 쓰기도 한다. 의류 소재도 100% 국내산이다. 다만 봉제와 생산은 베트남공장이 80%로 대부분을 책임지며 중국이 10%, 국내에서 10%를 맡고 있다. 2개의 베트남 공장은 직원만도 6,000명에 달한다.

레드페이스의 품질이 뛰어난 데는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와는 차별화되게 정식 기관에 품질 검사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데 있다. 레드페이스는 한국섬유시험연구원 베트남 사무소와 손잡고 제품 및 원단 공정과 최종 검사를 생산 전량에 대해 진행시키고 있다.

레드페이스의 제품력의 완결판인 대표 원단은 한국의 고어텍스라는 별칭을 붙여준 '콘트라텍스'. 레드페이스가 국산 소재로 자체 개발한 원단으로 고어텍스의 대항마로 꼽힌다. 이 소재는 완벽한 방수ㆍ방풍 기능과 더불어 땀을 배출시키는 투습성으로 등산ㆍ아웃도어 활동시 최적의 컨디션을 보장한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는 '이엑스-쿨 드라이' 소재도 스테디셀러다. 고신축성 소재 '이엑스-스트레치', 정전기 방지 및 방취 위생 소재 '이엑스-실버', 산악지형용 등산화 밑창 소재인 '콘트라-릿지' 등도 레드페이스가 개발한 대표 기술력이다.

이 같은 제품력을 밑바탕으로 레드페이스는 2002년에는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ISO9001 품질 인증을 획득하고 2004년에는 효율적인 배송 체계를 위해 안성에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레드페이스는 올여름 이처럼 자체 개발한 소재를 적용한 고기능성 클라이밍 의류 '미니피케클라임' 티셔츠와 '라이트액티브클라임' 팬츠를 선보였다. 속건ㆍ속습기능에 고신축성, 자외선차단, 냉감 효과를 모두 갖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미니피케클라임 티셔츠는 속건ㆍ속습 기능이 우수한 이엑스-쿨 드라이 소재를 사용해 더운 여름 장마철에도 쾌적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으며 신축성이 우수한 크레오라 소재를 5% 추가해 편안한 착용감과 활동성이 보장되는 반소매 짚업 스타일이다.

라이트액티브 클라임 바지는 신축성이 뛰어난 이엑스-스트레치를 사용해 전방향으로 늘어나며 미니립 소재라서 착용감이 좋다. 마찰이 잦은 무릎ㆍ엉덩이 부위에는 견고한 원단을 배색으로 사용해 심한 활동에도 내구성이 우수하다.

유 사장은 "올여름에는 지난 시즌보다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의 아웃도어 클라이밍 제품을 2배 이상 늘렸는데도 판매율이 70%에 이르고 있다"며 "F/W 시즌에는 업그레이드된 콘트라텍스 시리즈와 의류ㆍ용품ㆍ신발 전품목에 '정우성 라인'을 추가해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