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다. 영화가 좋다면 이 모호함 때문이고, 영화가 아쉬웠다 해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편’을 드느냐는 이 작품에서 무의미한 이야기다. 어느 편이건 결국 모두 꿈일 뿐,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로 1,000만 감독 반열에 오른 이준익 감독의 세 번째 사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 꿈을 꾸는 자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황산벌’의 풍자와 ‘왕의 남자’의 허무가 함께 보이는 작품은 박흥용 화백의 동명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던 원작과 다르게 냉소적이고 풍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임진왜란 직전인 1592년 조선시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어 혼란스럽게 다투는 정국 속에 왜구의 침입이 이어지고 있다. 썩은 조정을 대신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뜻을 모은 몇몇이 ‘대동계’를 조직하지만 이 마저 역모로 몰려 해체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대동계 내부에서 왕을 끌어내려는 급진파 이몽학과 초기의 목적에 집중하자는 현실파 맹인 검객 황정학이 대립한다.
“동인이 왜구가 쳐들어온다고 했으니 우리는 안 온다고 해야지”, “서인이 아니라고 하니 우린 맞다고 해야지”영화는 시도 때도 없이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의 모습을 비웃고 리더십 없는 왕의 모습을 풍자한다.
맹인 검객 역의 황정민과 야심에 가득찬 이몽학을 연기한 차승원의 열연은 관객을 기대를 충족시킨다. 황정민은 구성진 목소리로 적절한 애드립을 구사하며 극의 리듬을 이끌고 야심을 드러내기 위해 송곳니까지 붙인 차승원은 ‘세상을 구하는 악인’의 모습을 잘 살려냈다.
하지만 둘의 열연에도 영화가 모호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감정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립만으로도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거늘, 영화는 원작의 주인공인 권력가의 서자 ‘견자’의 복수도 함께 전개하고 여기에 이몽학의 연인 ‘백지’의 로맨스까지 얹으려 한다. 견자 역의 백성현은 고군분투했지만 세 남자 틈바구니에서 백지 역을 맡은 한지혜는 혼자 붕 뜬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좋은 배우와 원작, 감독이 모여서 과욕을 낳은걸까? 훌륭한 연기와 풍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구름에 가려진 달처럼 모호함만이 남는다.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