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당국 및 금융권이 중소기업의 연체율증가 등 부실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가계부실문제를 뒤늦게 손댔다가 엄청난 후유증을 겪은 선례를 밟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아직 중소기업의 신용대란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조짐이 적지 않다는 게 당국의 진단이다. `경기부진→매출감소→신용도하락→금융기관 대출회수→중소기업 자금난→부실폭발`등의 악순환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은행들도 조심스럽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중소기업 여신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등 꼼꼼히 따지고 있고 연체회수에도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높아지는 연체율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은행들, 중소기업대출 심사강화=중소기업 대출에 여전히 적극적인 은행도 있지만 몇몇 대형은행들은 올 들어 예전과 다른 표정이다. 최병길 우리은행 부행장은 “경기부진과 소비위축이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문제가 되기 전에 부실가능성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은 “작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더 이상의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일방적인 독려는 사라졌다”며 “대신 `연체를 최소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아무래도 대출 취급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고 소개했다.
◇대출ㆍ연체 동시에 늘어=지난 1월말 현재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229조원. 전체 기업대출 275조원의 83.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이후 급증세가 계속된 결과다. 중소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잔액도 2003년11월말 현재 32조6,786억원으로 외환위기 직전인 97년의 11조3,286억원의 3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경기가 나빠 중소기업의 매출이 줄고 상환능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2년말까지 1.98% 수준이던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은 지난해 3월 2.40%로 급증한데 이어 9월말에는 2.71%로 늘었다.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은 2.82%로 더 높다. 0.40% 수준의 연체율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대기업과 구분된다. 외환위기 이후 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연속 감소해오던 부도업체수가 지난해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도 위험신호다. 지난해 가계수표 부도율이 전년의 3배 가까이 치솟았다는 것도 자영업자들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가계당좌예금을 근거로 발행하는 가계수표는 규모가 영세한 중소서비스사업자들이 주로 쓴다. 올 들어서도 가계수표 부도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1%로 전체 부도율 0.13%의 16배에 달했고 당좌수표의 0.1%나 약속어음의 0.2%보다도 훨씬 높았다.
◇정부 선제적 대응 의지=급증한 대출이 부실로 이어져 위기를 낳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신용불량과 카드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깔려 있다. 대응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신용보증기금의 적정한 관리로, 눈덩이처럼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의 자산증가속도를 억제해 나간다는 것이다. 신제윤 재경부 금융정책과장은 “신용보증기금 잔액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또는 총통화 증가율과 연동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하나는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줄여나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18%선인 중소기업 대출잔액 증가율도 내년까지는 8%대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 “부작용 고려해 신중하게 풀어야”=문제는 정책의 당위성은 이해하지만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체질이 약화된 탓이다. 가뜩이나 회사채 금리차 확대로 인한 조달금리 상승과 내수침체, 원자재 확보난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돈줄을 죌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꾸준한 추이를 유지하는 대기업 대출과 달리 급증과 급감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패턴을 지닌 중소기업대출이 지금 꼭대기에 와 있다”며 “중소기업 대출의 연착륙 여부가 우리 경제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