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해결 못하는 기초생활보장제] <상> 구멍 뚫린 복지체계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10원 많아도 복지급여 한푼도 못받아
빈곤층 늘었는데 수급자 134만명… 제도도입후 최저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놓고 국회서 허송세월만


지난 2000년 처음 도입돼 15년간 유지돼온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양산하는 등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2010년 정부의 빈곤실태조사에 따르면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층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급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117만명에 달하고 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가구의 소득이 정부가 매년 책정하는 가구당 최저생계비보다 많으면 생계비와 의료·교육·주거비 등 모두 7개에 달하는 급여를 하나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가구당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부양의무자가 해당 가구를 부양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역시 모든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

이처럼 경직된 급여 수급 요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생계비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복지 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현행 급여체계는 실제 도움이 필요한 빈곤층에 적정한 급여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되면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많더라도 생계(현행 수준~중위 30%), 의료(중위 40%), 주거(중위 43%), 교육(중위 50%) 등 각각의 급여별 산정기준에 따라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월 소득이 164만원인 4인 가구 부양자는 현 제도로는 소득이 4인 가구 최저생계비(163만8,000원)보다 많아 모든 급여를 받을 수 없지만 바뀌게 되는 제도로는 소득이 중위 43%(약 173만원)에 못 미쳐 약 7만원의 주거 급여는 받을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제도가 개편되면 월 소득이 80만원인 경우에는 기존에 받아 오던 생계·주거 급여가 16만원 정도 올라가게 되고 월 소득이 130만원인 경우에는 주거 급여가 약 22만원 상승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여전히 많은데 기초생활수급자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이다. 2013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농어가를 제외하고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절대빈곤가구의 비중은 △2006년 10.7% △2009년 12.8% △2012년 11.1%로 매년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시장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가구의 비중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도 △2007년 17.3% △2010년 18.0% △2013년 17.8% 등 대동소이한 흐름이다. 이에 반해 기초생활수급자수는 2009년 이후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09년 약 156만명이던 수급자 수는 2014년 5월 현재 134만명으로 줄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후 가장 적은 규모다. 이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밖으로 내몰린 계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문제는 수치뿐만 아니라 잇따르고 있는 생활고 비난 자살 사건으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올 2월에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3월에는 경기 동두천의 모자가 세상과 등졌다. 같은 달 울산 북구의 한 40대 차상위계층 남성도 자살을 선택했다. 특히 단순 일용직으로 일하다 건강이 나빠져 일을 못하게 된 이 남성은 올 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오래전 헤어진 부모와 형제가 살아있다는 점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등의 내용을 담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작업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부양의무자가 빈곤 가족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하고도 중위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따로 살고 있는 홀어머니(1인 가구)를 자식(4인 가구)이 부양할 경우 월 소득 기준이 현재 290만원(수급자가 노인·장애인일 경우 413만원)에서 464만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최소 12만명의 빈곤층이 새롭게 수급 자격을 얻게 될 것으로 복지부는 추산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되지 않아 12만명이 넘는 빈곤층이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정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등의 이견 속에 국회에 머물러 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부양의무자 범위에서 사위와 며느리·노인을 제외하고 소득기준까지 완화해 수급자를 최소 21만명 늘리자는 안을 제시했고 같은 당 김용익 의원도 부양의무자에서 사망한 직계혈족의 배우자는 제외하고 수급자 재산 기준도 완화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크게 완화할 경우 더 많은 빈곤층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부모의 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이 재산을 배우자 앞으로 돌리는 등의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고 그만큼 재정 부담이 커지는 단점도 제기돼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