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대 후반 불어닥친 오일쇼크를 빠르게 극복한 일본 경제는 1980년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성장을 주도한 일본 제조업에는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지만 한편에서는 장시간 근로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근로자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무려 2,300시간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1,600~1,700시간, 상대적으로 긴 미국과 영국의 1,900시간과 비교해도 너무 길었다.
일본은 마침내 정부 주도로 1986년 '마에가와 리포트'를 발표하고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내용의 경제정책을 수립했다. 일본 내각은 근로시간 단축을 약속했고 1987년 노동기준법을 개정해 1988년부터 단계적인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갔다. 이후 일본은 1997년까지 10년에 걸쳐 48시간이었던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까지 줄였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포함해 주당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의 4월 법제화가 사실상 힘들어지면서 한국도 일본처럼 더 많은 시간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10년여에 걸친 치열한 논의 끝에 마련한 법을 우리는 2년 남짓한 기간에 만들겠다는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2년 1월 말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할 경우 약 25만개의 일자리 창출 여력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발단으로 시작됐다. 이후 당정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근로시간을 줄이기로 합의하고 올해 국회 환노위에 '노사정소위'를 구성한 뒤 입법화에 나섰으나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무산됐다. 시행시기·유보조건 등 노사 간에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는 사안에 대한 절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주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10년 만에 노동시장에 대변혁을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을 졸속으로 추진하다가 벽에 부닥치고 만 것이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예고돼 있지만 이를 이유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영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결을 지켜보고 해도 되는데 정치권이 조급증에 걸린 것 같다"면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단기에 종결하겠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근로시간 단축 말고도 오는 2016년부터 시행될 60세 정년연장, 최근 대법원의 통상임금 범위 확대 판결 등으로 근로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10년 전 주40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최대의 노동시장 환경 변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통상임금 등의 이슈들은 핵폭탄급 노동환경 변화"라며 "철저한 준비와 완충장치 마련 없이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경영환경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