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이 연말을 앞두고 불요불급한 공사를 마구 벌이고 있는 것은 배정받은 예산을 남겨서는 안되게 돼있기 때문이다. 예산을 남겨 불용액 처리를 받을 경우 이 예산은 다음해로 이월된다. 동시에 관련 공무원은 문책을 받고 다음해에는 비슷한 사업에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다. 중앙정부의 경우 예산회계법, 지자체는 지방재정법상의 규정 탓이다. 여느면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사실 예산은 규모에 꼭 맞춘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수입원자재의 가격상승이라던가, 각종 재해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얼마든지 있다. 한 두차례 추경편성이 불가피한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그런데도 예산은 절감해선 안되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현재 여러 곳에서 도로를 보수중이다. 포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도로를 다시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공사시간도 낮 시간대를 골라, 극심한 교통체증은 물론 주민들의 통행에도 엄청난 불편을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연말은 바쁘게 마련이다. 공사까지 겹쳐 있으니 국제통화기금체제속에서 가뜩이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배정받은 예산을 연말까지 처리하느라 숫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 지자체 가운데는 인건비예산이 바닥나 월급에 비상이 걸려 있는 곳도 있다.
IMF체제속에서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모두 허리띠를 졸라 매고 한푼이라도 아껴써야 할 상황이다. 예산은 필요했기에 편성됐다. 따라서 용도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절감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인센티브시스템을 도입, 예산을 절감하는 공무원에게는 각종 특혜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문책하거나 남은 예산을 불용액으로 처리하는 현행제도는 문제가 있다.
예산제도에 탄력성이 부여돼야 한다. 연말께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길 파헤치기는 이제 중단돼야 한다. 아직도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