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독재자'는 결코 평범치 않은 인물, 김성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드라마다. 1972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의 회담 리허설을 돕는 김일성의 대역을 연기하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무명배우 김성근. 현실과 극의 경계에 서서 묘한 이질감을 뿜어내는 이 비현실적인 인물에 설득력과 생동감이 생겼다면, 그건 분명 김성근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의 힘이다.
배우는 이번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앞에서의 연극 장면'은 25년 경력의 배우에게도 버거웠다. "22년간 김일성의 대역으로 살아온 김성근이 실제로 그 무대에 오르는 건데, 첫 말을 어떻게 떼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다"
배우가 혼란을 느낀 이유의 일정 부분은 김성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명쾌하지 않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김성근은 김일성이라는 배역에서 못 빠져나오는 걸까, 안 빠져나오는 걸까. 이 지점은 촬영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라고 운을 뗀 설경구는 "나는 안 빠져 나오는 것에 좀 더 비중을 뒀다"고 했다. "이거밖에 없는 사람이니깐, 이 연극의 탈을 벗는 순간 아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깐. 그래서 성근은 역할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성근의 이런 모습은 배우 설경구가 역할을 맡기로 결심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설경구는 "무명 배우가 그냥 김일성 흉내를 내는 이야기였다면 안 했을 것"이라며 "아들을 위해 배역에 몰입하는 그 시대의 아버지 모습이었기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자식 위에 군림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식에게 먹히면서 살아온 세대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존재도 없이, 그저 자식만을 위해 살아간 사람들. 다 뜯어먹힌 후 쪼그라든 모습이 슬프고, 때로는 비참하게까지 보이지만 그렇게 사는 방법밖에는 모르던... 그런 내 아버지 시대 분들의 이야기다"고 덧붙였다.
영화가 감동을 주는 지점 역시 이런 감정과 맞닿아 있다. "성근은 대통령과 실제 연극을 하며 너무 무서워 벌벌 떨며 식은땀까지 흘리지만, 그러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절대 지지 않으려 했다. 아들 앞에서라면 대통령에게도 안 밀리려는 게 바로 '아버지'라는 사람들 아닐까" 30일 개봉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