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병` 고치려면

얼마 전 제45회 사법시험의 나흘 일정이 끝났다.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밤잠을 못 자 시험날 아침에 구토하는 딸 아이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대한민국은 `고시 왕국`이라고 한다. 고시촌인 서울 신림동의 상주 인원만 5만명 이상이고 매년 각종 고시에 합격하는 1,000~2,00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언제 올지 모르는 합격 혹은 포기의 시간을 기다리며 같은 내용의 공부에 매달린다고 한다. 고시 제도에 대해 `인재낭비`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관계 당국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무원 인턴제도, 전문 인력 활용 등 제도개선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온 나라에 만연한 고시병을 고치자면 행정당국의 노력과 더불어 기업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고시에 사람이 몰리는 것 자체가 맹목적인 현상이라기보다 국내 기업들이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우수 인력을 고루 채용하고 발탁한다면 그 많은 사람이 구태여 고시에 매달릴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국내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이나 인사 관행은 그런 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신입사원 채용 시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는 연령제한제도다. 연령제한은 기업에 필요한 풍부한 상상력을 무조건 재단해버릴 수 있다.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시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려는 움직임이 절실한 상황이다. 선진 외국의 경우에는 인터뷰 때 나이를 묻지도 못한다. 둘째, 학벌ㆍ지연을 따지는 관행도 돌아봐야 한다. 출신학교나 지역에 상관없이 시험성적을 평가기준으로 삼는 공무원 선발 과정을 기업에서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셋째, 여성인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 출산과 육아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데서 비롯되는 불공정한 평가기준 등은 여성 인재를 기업에서 멀어지게 한다. 출산과 육아를 기업 발전과 상충되는 사안이 아닌 장기적 발전 요소로 재평가하고 이를 적극 배려함으로써 노사간에 유기적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기업인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런 노력이 배가되지 않는 한 여성인재들은 법적인 장치가 보장되는 공무원조직으로 눈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채욱 GE코리아 사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