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제휴] 업종간 영역허물기 국제적조류

이제 금융산업에서 「홀로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금고 등 그동안 자신만의 담을 쌓고 그 안에서 안주하던 각 금융권이 어느틈엔가 스스로 담을 허물고 옆집과의 왕래를 시작했다.이른바 「전략적 업무제휴」는 이제 금융산업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은행과 증권사가, 은행과 보험사가, 금융기관과 제조업체가 하나 둘씩 손을 잡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제휴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은행들간 제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이같은 추세를 가리켜 일부에서는 「유행병」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유행 쫓아가기」에 그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의 제휴바람이 금융기관의 내실을 다지는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유행병처럼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세는 「제휴야말로 금융산업이 가야할 길」이다. 서로의 능력을 공유함으로써 양측 모두 이익을 얻는 「윈-윈 전략」 없이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게 금융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금융연구원의 김세진 연구조정실장은 『금융기관의 겸업화는 국제적인 추세』라며 『비교우위를 가진 금융기관끼리의 협력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당연히 가야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서상록(徐相祿) 상무도 『소모적인 경쟁관계에서 발전을 위한 협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며 『금융기관의 전략적 제휴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기관을 둘러싼 환경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급변하고 있다. 기업들은 차입경영 위주에서 벗어나고 일반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간접투자가 확산되는 등 고객의 수요는 날이 갈수록 다변화되고 있다. 금융기관 각자의 영역만을 고집해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업무 영역을 넓히기엔 현실적인 투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과거 정부가 정해 놓은 칸막이식 구역에 머물고 있는 각 금융권이 불필요한 지출 없이, 이미 갖춘 비교우위를 활용해 겸업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이 전략적 제휴』라고 김세진 실장은 설명했다. 예금·대출의 고유업무만으로는 살 길이 막막해진 은행권은 증권사나 보험사와 손을 잡는데서 수익성을 높이는 길을 찾아냈다. 증권, 보험사도 고객의 편의를 제고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권역을 뛰어넘는 제휴를 맺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수길(李洙吉) 한빛은행 부행장은 『제휴는 코스트(COST) 와 시간의 전략』이라며 『은행은 영업망과 고객기반, 전산장비를, 증권사나 보험사 등은 기술과 전문지식을 주고받는 시너지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히 선진 기법과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외국 금융기관들이 몰려드는 무한경쟁시대에 걸맞는 수익성과 수준높은 서비스를 갖추기에 국내 금융기관 혼자의 힘은 역부족이다. 각자가 뿔뿔이 흩어져 무모한 경쟁만을 일삼다가는 더 큰 싸움에서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세진 실장은 『금융기관간 제휴는 국가간에 동맹을 맺는 것과 같다』며 『침략을 당하거나 먼저 침공을 가하는데 힘이 부친다면 힘을 합칠 상대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앞으로 겸업화를 가로막는 감독당국의 규정이 완화되고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갖춘 외국 금융기관의 공략이 본격화되면 국내 금융산업내 제휴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선진 금융기관은 대부분 은행이나 증권, 보험, 투자은행의 기능을 망라한 「유니버셜 뱅크(종합금융그룹)」 형태를 취하고 있어, 고유 영역에만 국한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은 고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적과의 동침」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를 인식한 금융당국도 최근 금융업종간 제휴나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명백하게 금지돼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금융기관들이 자유롭게 업무제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금융업종을 둘러싼 울타리도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제휴」바람이 지나간 뒤에는 「유니버셜 뱅킹」이 국내 금융산업에 새로운 조류를 형성할 전망이다. 지금은 일부 은행과 보험, 은행과 증권사간에 기초적인 업무 제휴에 불과하지만, 이미 시작된 금융기관간 「영역허물기」는 지금껏 금융산업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규모 지각변동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신경립 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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