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는 중견 작가들의 '향연'

화랑가 오랜만에 40~50대 작가 개인전 잇달아

설원기의 '꽃과 버려진 종이'

정정엽의 '산양'

이순종의 '외계인을 위한 만찬'

젊은 작가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화랑가에 오랜만에 중견 작가들의 전시가 잇달아 열린다. ● 이화익 갤러리가 마련한 설원기(54) 개인전과 아르코 미술관의 기획초대전 정정엽(44)과 이순종(52)의 개인전이 그것. 이화익갤러리 설원기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작가 설원기는 전시에서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과 추상유화 등 30여점의 근작을 소개한다. 한지에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은 스케치나 밑그림 정도에 그치지 않고 완성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3년 전 개인전에서 처음 소개한 목탄 드로잉은 다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얻으면서 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평가의 계기가 됐다. 젊은 작가 발굴을 위해 99년 사재를 털어 국내 첫 대안 공간인 사루비아 다방을 열었던 그는 “당시에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중견 작가들이 설 땅이 없다”며 “새로움이라는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추세에 밀려 미술관들도 젊은 작가들에만 집중하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루비아 다방 이후 대안공간이 많이 생겨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며 “다음 프로젝트는 드로잉의 개념을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연말 드로잉센터를 열고 뉴욕ㆍ보스턴 등에서 활동하는 미국 작가들의 작품으로 초대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전시는 9월 7일부터 20일까지. (02)730-7817 아르코미술관 정정엽·이순종展 중견 여성작가들의 전시도 마련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은 기획시리즈 ‘중진작가 초대전’에 여성작가 정정엽과 이순종을 초청했다. 미술관측은 여성들의 풍부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전시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등 국내외 굵직한 전시에 초대됐던 정정엽은 사라져가는 소수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로 한 드로잉 작품을 출품했다. 쌀ㆍ콩 등 곡물로 작업을 해 온 그가 이번에는 펜과 잉크를 손에 쥐었다. 전시장에는 가장 가는 펜촉으로 붉은 잉크를 찍어 여우ㆍ늑대ㆍ도롱뇽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과 상처입은 여성을 세밀하게 그린 드로잉이 장식없이 걸려있다. 왜 펜과 붉은 잉크냐는 질문에 작가는 “펜은 기록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도구로 멸종동물이나 정체성이 손상된 인물을 살려내는 작업에 어울리며, 붉은 색은 증언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라고 말했다. 전시에는 드로잉 100여점과 유화 20여점이 소개된다. 이순종은 현란한 길거리 광고판의 여성이나 음식물 이미지를 그린 회화ㆍ영상ㆍ설치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고추장으로 그린 미인도 등 동양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해 눈길을 끌어왔던 이순종이 이번에는 바비 인형을 소재로 한 작품을 신작으로 소개한다. 그는 “전시에는 여성을 상품화 하는 세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며 “관객들이 거대한 기물이나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조그마한 인형 등 사소한 것에서도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6일부터 30일까지 계속된다. (02)760-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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