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22> 무관심한 질문? 완전히 꺼두셔도 좋습니다


몇 살이세요? 첫 만남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인 대화를 이끌어 내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죠. 물론 문화권에 따라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엔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이 나이쯤엔 무슨 일을 하고 있겠다’라는 나이에 걸맞는 구체적 표준 행동양식을 전제로 하니까요. 예를 들어 8살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9살엔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20대 중후반엔 직장에 들어가고, 30대쯤엔 결혼을 했겠구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요즘은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로 사회적 연령 주기의 ‘취업’부분에 해당하는 연령대가 확대되긴 했지만 나이를 묻는, 그렇게 상대방의 상태를 짐작하려는 질문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달갑지 만은 않은 질문의 주인공은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 친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절마다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단골 설문조사가 ‘왜 고향에 방문하기 싫은가’이고 단연 상위권에 ‘취업은 했냐’ ‘결혼은 왜 안하냐’ 같은 듣기 싫은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오릅니다. 한 장수 취업준비생은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아 도서관이 훨씬 마음 편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취업이 이런 질문의 악순환을 끊어내지는 못합니다. 취업 후엔 결혼, 결혼 후엔 출산처럼 하나의 스테이지를 끝내면 또 다른 스테이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임 하듯 말이죠. 문득 궁금해지네요. 당하는 사람은 진저리 날 정도로 싫다는데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본능은 대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관심을 표현하는 질문의 근원은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기분, 상황 등을 진심으로 고려한다면 애초에 곤란한 질문 따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설령 몰라서 그랬다면 반복되는 참사는 없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날짜와 장소만 다를뿐 기분 나쁜 상황은 어김없이 연출됩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기자에게 회식 자리가 불편하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매번 같은 걸 묻는 상사에 대한 불만때문이었습니다. 남자친구와는 얼마나 사귀었느냐, 남자친구는 뭐하냐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한 두 번도 아니고 함께 자리를 할 때마다 묻고 또 묻는 다는 겁니다. 그리고 답변을 들을 때마다 상사가 놀란다고 전했습니다. 한 대기업의 부장에게 본인도 그러시느냐 묻자 멋쩍게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부장의 변은 이렇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부하직원에게 가벼운 질문을 몇 개 던짐으로써 관계를 돈독히하려는 목적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질문자에게는 답변의 내용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툭 던져 놓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별 거 아닌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와 함께 하는 자리 자체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하직원이 또는 조카가 당신과의 만남을 어색해한다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가족모임 자리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면 나의 무관심한 질문이 생채기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무관심한 질문보다는 차라리 불필요한 관심은 꺼주는 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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