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인사 1천800여명 상시 불법감청"

대통령 친인척ㆍ여야 정치인ㆍ재계ㆍ언론계 등 망라
임동원ㆍ신건씨 구속영장 발부…법원 "경종 울릴 필요 있다"

김대중 정부시절 국정원이 대통령 친인척과 여야 정치인 등 정ㆍ재ㆍ언론계 및 사회지도층 인사 1천800여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감청장비에 입력해 놓고 통화내용을 상시 도청해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는 국정원이 몇몇 인사들의 동향 파악 수준을 넘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지도층 전반을 `감시'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해석돼 여파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5일 김대중 정부 중ㆍ후반기에 국정원장을 차례로지낸 임동원ㆍ신건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국정원장 재직시 감청부서인 제 8국(과학보안국) 산하 감청팀을 3교대로 24시간 운용하면서 상시적으로 국내 주요 인사들의 휴대전화를 불법감청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불법 감청한 주요 인사의 통화내용 중 A급으로 분류된 중요 사항을 하루6∼10건씩 2차례에 걸쳐 통신첩보 형식으로 보고받고, 국내 주요 현안이 발생할 경우 관련 내용에 관심을 나타내거나 추가 첩보를 수집하도록 독려해왔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이들이 재직할 당시 국정원은 대통령 친인척인 이모씨와 박모ㆍ정모씨 등 여당 정치인, 이모, 최모씨 등 야당 정치인, 최모ㆍ박모ㆍ정모씨 등 경제인등의 휴대전화 번호 1천800여개를 감청장비인 `R-2'에 미리 입력해 놓고 상시감청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2000년 말 안기부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의혹사건이 불거지자 임동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강삼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통화내용을 여러 차례 불법 감청했으며,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 사이 박재규 당시 통일부장관과 통일부 간부 간 대북지원 관련 통화를 도청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국정원은 또 2001년 5월에는 안동수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민주당 관계자의 통화를, 2001년 8월에는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와 김모씨 간 `언론사 세무조사에대한 항의단식 농성' 관련 통화 내용을 감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밖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비판했던 한국논단 이도형 사장, 현대그룹 유동성위기와 관련한 현대그룹 오너 일가 및 경영진 등도 국정원의 도청대상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김득환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밤 두 전직 원장의 구속영장을발부하면서 "두 전직 원장이 도청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수사기록에 나와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과 여러 정황에 비춰 신빙성이 있다고 보이고, 직ㆍ간접적으로관여ㆍ묵인했다고 보여 범죄 소명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두 전직 원장이 비록 국가에 많은 공헌을 했고 임 전 원장의 경우 70살의 고령이라는 점을 참작했지만 국가 기관이 불법 행위로 국민의 기본권을침해한 것은 중대한 사안이어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전직 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김대중 정부시절 국정원이 불법감청을 통해 입수한 도청정보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 등을 규명하는 검찰 수사가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도청실태 등을 밝히는 보강조사를 벌여 구속기소한 뒤 이르면 다음 달 초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넉 달 가까이 진행된 수사를 일단락지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 전직 국정원장은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청 개입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동원씨는 이날 밤 11시 25분께 서울구치소로 수감되는 길에 "불법 감청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원장 재직시절 불법 감청 행위를 적발해 사전에 조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휘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신건씨도 구속 수감에 앞서 "국민의 정부 국정원장들은 과거 도청팀을 구조조정하고 불법 감청에 사용된 장비를 완전히 폐기함으로써 (불법감청에) 역사적 종지부를 찍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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