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대전] 보험의 은행화

요즘 보험사들의 화두는 단연 「은행잡기」다.보험사들이 고객과 지점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거대은행을 파트너로 잡아 공동 상품을 내놓는 「제휴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고객이 제휴상품에 가입하면 은행부담으로 보험에 가입시켜준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보험사와 은행간의 이같은 제휴가 금융빅뱅의 서막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보험사가 은행을 거느리고,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파는 「영역없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방카슈랑스나 지주회사 개념이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상륙, 「금융 백화점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윈-윈(WIN-WIN)게임= 아직까지 국내 보험-은행간 협업은 엄격한 경계선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현행법상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팔지 못하므로 은행이 보험 공짜가입을 미끼로 예금고객을 끌어모으는 수준. 보험사도 은행 덕분에 모처럼 「앉아서 장사」를 하게 됐다. 이수창(李水彰) 삼성화재 대표는 『은행과의 제휴 마케팅은 금융업종간 윈-윈 게임의 대표적 성공작』이라며 『격변기를 맞이해 보험과 은행, 증권 등 서로의 장점을 취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빅뱅의 전주곡= 변화는 보험과 은행간 판매협조(대행 판매)→합작법인 설립→인수합병→지주회사 설립 등으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로는 보험과 은행간의 경계선을 지워버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 정재욱(鄭宰旭)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이 고객의 욕구에 맞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영역구분이 트여야 할 것』이라며 『보험사로선 판매채널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비용 부담이 적은 은행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설계사들의 「안면장사」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것이 사실. 그러나 자금조달에 코스트(비용) 개념이 높아지면서 이같은 전통적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는게 보험업계의 인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이 판촉활동을 위해 돌리는 껌이나 사탕, 휴지 값만 줄여도 고객에게 돌아가는 몫이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은행에 군침흘리는 보험사들= 일부 대형 보험사들은 오래전부터 은행을 인수하거나 자회사로 설립해 「종합금융그룹」으로 거듭나기를 꿈꿔왔다. 은행지분 보유한도(현재 8%)만 풀린다면 곧바로 은행을 인수해 보험과 예금상품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원스톱 쇼핑공간」을 구성하겠다는 발상. 실제로 교보생명의 경우, 한때 하나은행 주식의 8% 가까이를 확보하기도 했다. 보험회사들이 모델 케이스로 삼는 것이 프랑스식 「방카슈랑스」와 미국식 「지주회사」 개념이다. 방카슈랑스(BANCASSURANCE)란 은행(BANK)과 보험(INSURANCE)을 합친 말로, 은행창구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 선진국에서는 지난 90년대 벽두부터 보험사가 은행을 인수하거나(ING) 연금 및 증권사업(푸르덴셜)까지 진출해 전방위 사업을 펼치는 금융 정글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금융권역별 진입규제가 있는 미국에서조차 각 금융사들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지주회사 형태로 다른 업종에 침투하는 선단(船團)식 운영을 하고 있다. ◇재벌 금융시장 독점 우려도=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이같은 「영역파괴 열풍」은 한국적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주인이 없는 은행과는 달리, 보험사 가운데 상당수는 재벌 계열이어서 이들의 무차별 확산이 금융시장 지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 산업자본을 지배하면서 덩치를 키워온 재벌들이 금융시장까지 장악, 우리 경제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위원회 최범수(崔範樹)박사(위원장 자문관)는 『금융시장의 영역철폐는 세계적 추세이고, 마땅히 가야할 방향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며 『경영과 자산운용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이 전제』라고 말했다./금융팀 SBCHO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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