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줄서기에 급급한 소장파

지난 16대 국회 시절 한나라당에는 미래연대라는 모임이 있었다. 당 개혁을 외치며 원내외 지구당위원장급 20여명이 주축을 이뤘다. 참신성을 인정받았지만 이들은 결국 2003년 당권 싸움 속에서 최병렬파와 서청원파로 갈라져 모임 자체가 와해됐다. 주축 몇 명이 열린우리당으로 가버린 것도 모임 간판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2004년 17대 총선 후 한나라당에는 수요모임이라는 소장파 모임이 생겼다. 현역 의원들 중심으로 구성돼 당 개혁을 외쳐왔다. 원희룡 의원이 그해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표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직을 거머쥐었고 이성권 의원은 청년위원장에, 김희정 의원은 디지털위원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정병국 의원은 사무총장급인 홍부기획본부장에 발탁됐고 5ㆍ31 지방선거에서는 이들의 지원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들 중 원희룡 의원이 이달 중 대권 도전을 선언한다고 한다. “낙선이 겁나지는 않는다. 계산이 필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개혁적인 후보가 ‘빅3’ 중에 없다면 우리가 원하는 후보를 내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20여명의 수요모임 소속 의원 중 단 두 사람만이 ‘독자후보론’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머지 수요모임 의원들은 모습을 감췄다. 이들이 누구를 지지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항상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여왔던 이들이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다. 수요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개혁 운운하다 막상 이명박ㆍ박근혜라는 ‘미래의 권력’ 앞에서는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기할 정도로 2003년 미래연대 와해 과정과 비슷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면 수요모임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내년 대선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들이 이번에는 ‘월요모임’을 만들려나.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꼴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