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수신금리 줄인하

대출금리 하락으로 악화된 수익 보전하기
"과도한 규제에 시중금리 비정상적 흐름"


시중은행이 대출금리에 이어 예적금 등 수신금리도 줄줄이 내리기 시작했다.

은행은 실세금리를 반영했다는 입장이지만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고정금리 대출 비중 20%를 맞추기 위해 대출금리를 크게 내린 여파가 수신금리 격변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들이 정부의 고정금리 대출과 관련한 규제강화로 예대마진이 하락하자 수신금리를 낮춰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서 비롯된 주담대 금리인하가 수신금리와 시장 실세금리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금리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1일 금융계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1년제 알뜰살뜰자유적금 금리를 이날부터 2.70%에서 2.60%로 0.1%포인트 내렸다. 앞서 기업은행은 지난 9일에도 예금상품인 친서민섬김통장(1년 이상 2년 미만) 금리를 2.3%로 0.1%포인트 인하했다.

우리은행도 9일부터 1년제 '우리유후정기예금(옛 우리토마스정기예금)' 금리를 2.5%에서 2.4%로 0.1%포인트 내렸다. 1년 전과 비교하면 0.3%포인트 인하한 금리다.

앞서 하나은행도 지난달 1년제 예적금 금리를 모두 0.1%포인트 낮췄으며 농협은행은 대표상품의 기본금리에 손을 대지 않고 우대금리를 인하했다.

대상은 헌혈 등 사회공익 활동 1건당 0.5%를 얹어주던 하트적금 상품이며 우대금리를 0.3%로 0.2%포인트 내렸다.

신한은행도 기본금리 2.4%(1년제)에 불과한 '인천 아시안경기대회 성공기원 정기예금'을 밀면서 이보다 높은 금리의 예금 판매를 대회 직전인 오는 9월 중순까지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인하가 실세금리가 내려가고 있는 데 따른 후속조치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예적금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조달금리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년물 금융채 금리는 지난해 9월 말 이후 현재까지 별다른 등락 없이 2.7%대를 유지하고 있다. 조달금리에서 원인을 찾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보다는 최근 정부의 고정금리 대출비중 규제 등으로 촉발된 주택담보대출의 금리인하 경쟁이 예적금 금리인하의 빌미가 됐을 개연성이 더 높다.

최근 고정금리 주담대 최저 금리는 은행별로 3.2~3.3%까지 내려간 상태다.

농협은행의 5년 고정금리 혼합형 주담대(채움 고정금리 모기지론) 금리는 3.25%, 기업은행(IBK주택담보대출) 3.29%, 외환은행(안심전환형모기지론) 3.25%, 국민은행(For you 장기대출) 3.35% 수준이다. 일부는 변동금리 대출 보다 금리가 더 낮다. 3월 말 현재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은 고정금리 비중이 정부 기준인 20%에 6~8%포인트가량 낮은 12~14%대에 불과해 금리경쟁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고지를 용케 달성해도 2016년 고정금리 비중은 30%가 돼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올 1·4분기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1.8%까지 떨어졌다. 대출금리 인하에 따른 마진 악화를 다른 영역에서 벌충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예대마진이 전체 이익의 90%가량을 차지하는 현재 은행의 수익구조에서는 수신금리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정부 규제가 대출금리 인하와 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이 때문에 다시 수신금리 인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인 셈이다.

저금리로 예대마진의 압착이 심한 상황이라 금리인하에 따른 고객의 체감도 이전보다 더 커져 은행 자금이탈도 나타나고 있다. 신한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6조6,144억원에서 올 5월 말 6조3,9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문제는 가계대출 연착륙을 목표로 했던 금융당국의 고정금리 대출규제가 시장원리를 훼손하면서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 악화가 염려된다.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시장금리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자칫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경기회복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고정금리 대출규제를 강화하다 보니 고정금리 상품의 금리가격 책정에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구나 고정금리 주담대 금리의 가격 하락폭이 크다 보니 대출상품의 쏠림 현상도 우려된다. 가령 자영업자의 경우 소호대출을 외면하고 금리가 더 싼 고정금리 주담대로 옮겨갈 여지가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연체율 관리 등에도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 가뜩이나 기업 구조조정으로 창업 시장에 중장년층이 쏟아지고 있어 각별한 대응이 요구된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저축 고객이 애꿎은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규제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당국으로서는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대출의 연착륙이라는 정책목표도 중요하지만 은행의 수익성 악화도 심각한 만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날로 악화하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감안해 수익과 관련한 비즈니스는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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