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제지 분쟁에서 한국의 승소를 확정함에 따라 WTO '분쟁전'에서 한국은 '5전 4승 1패'의 호성적으로 올 한해를 마감하게 됐다.
한국은 올들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한 조선업 보조금 관련한 제소 및 맞제소건, 미국 및 EU의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던핑 관세를 문제삼은 2건, 인도네시아측이제소한 제지 분쟁 등에서 WTO 분쟁패널의 판정보고서를 받아들었다.
성적표를 살펴보면 조선업 보조금과 관련해 EU가 제소한 것과 한국이 맞제소한 2건과 인도네시아와의 제지 분쟁에서는 압승을 거두었고 EU측을 제소한 D램 분쟁에서는 부분 승소를 거두었다.
다만 미국과의 D램 분쟁에서 당초 패널에서 부분 승소를 거두었다가 상소기구에서 번복돼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것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전체 성적표를 보면 우리가 제소를 당한 2건의 분쟁에서 모두 이긴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WTO의 분쟁사에서 제소국의 승률이 90%인점에 비춰본다면 '선방(善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성적표는 다른 나라들과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올들어 발표된 패널 및 상소기구의 판정 보고서는 모두 14건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4승을 거두었고 미국과 브라질이 각각 3승, 태국, 호주, 멕시코가 각각 2승을 거두었다.
28일 승소가 확정된 한.인니 제지 분쟁은 한국이 반덤핑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제소당한 사례다. 한국 무역위원회의 반덤핑 조치가 시비에서 벗어나 국제적 추인을받게 된 것도 수확에 속한다.
한국 무역위원회는 지난 1997년 8월 EU의 혼합분유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가 WT0에서 협정 불합치 패소 판정을 받은 전례가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지난 9월 산업용 로봇에 대한 한국 무역위원회의 반덤핑조치가 한때 제소 직전 단계까지 간 바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니와의 분쟁에서 승소한 일이 무역위원회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본다고 평한다.
올해를 포함한 역대 성적표를 보더라도 한국의 기록은 상당히 양호하다. 지난 1995년 WTO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간 한국은 모두 23건(제소 12건, 피소 11건)의 분쟁에 휘말렸다. 이 가운데 양자협의 단계에서 타결된 분쟁은 제소 3건과 피소 5건 등 총 8건.
나머지 15건의 '실전'에서 한국은 10승 4패로 승률 71.%를 기록하고 있고 내년초 나올 일본과의 김 쿼터 분쟁에서도 승소가 유력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승률은 지난 2000년 이후 크개 개선되고 있는 추세. 이는 한국이 국내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WTO제소 절차를 활용한 덕분이기도 하다. WTO분쟁사에서 제소국의 승률은 일반적으로 90%에 달한다.
올해 2건의 피소건에서 모두 이긴 것은 한국의 무역제도가 차츰 정비돼 WTO규범을 비롯한 국제기준에 수렴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 그러나 한국의 분쟁 대응능력이 강화됐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안명수 통상교섭본부 법률팀장은 올해 통상전쟁에서 5전4승 1패의 성적을 거두는데 크게 기여한 '선무공신(宣武功臣)'의 한 사람. 주제네바 대표부에 근무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패널 심리를 철저히 준비해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WTO출신이라는 것도 한국의 분쟁 대응 능력이 강화시키는데 플러스 효과를 발휘했다. 김 본부장은 WTIO사무국 법률국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2003년 5월 통상교섭 조정관으로 부임한 이후 분쟁 해결팀을 진두지휘했다.
김 본부장이 조정관으로 일하던 시기는 올해 패널 판정이 나온 5건의 분쟁에 대한 심리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김 본부장이 작년 3월 개최된 EU와의 조선분쟁에 직접 참석한데 대해 WTO주변에서는 이례적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조태열 주제네바 대표부 차석대사가 지난 6월 유럽연합(EU)과 미국, 캐나다의 호르몬 처리 쇠고기를 둘러싼 분쟁을 조정할 패널의 의장에 선임된 사실은 한국의 관련 부문 인적 능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여실히 뒷받침한다. 한국인이 WTO 분쟁 패널 위원에 참여한 경우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으나 패널 의장직에 진출한 것은 조 차석대사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조 차석대사가 맡고 있는 사안은 WTO의 미해결 분쟁 가운데 대단히 비중있는 것이기도 하다.조태열 차석대사는 지난해에 온두라스와 도미니카 공화국간 담배분쟁에서 패널 위원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의 이해가 걸려 있는 다수의 WTO 분쟁에서 한국 정부 대표로 참여한 적이 있는 정통파 통상분쟁 전문가.
특히 1999년 미국이 제소한 인천공항건설공단조달 관련분쟁에서 한국이 승소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바 있다. 당시 분쟁은 미국이 특정국을 WTO에 제소했다가 패소한 드문 사례의 하나였다.
한국의 분쟁 대응능력이 제고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견제의 강도가 결코 누그러들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편 분쟁이 빚어지고 있는 품목을 보면 한국이 세계적 선도 위치를 차지하는분야에 집중돼 있는 경향이다. 앞으로 IT와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이 주도적위치를 차지하는 한 경쟁국의 견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