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일숙(57)씨는 요즘 수업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에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목이 매여 말을 이어나가기 힘들어 수업을 잠시 멈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 18일 단원고 교감 선생님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우울함이 배가 됐다. 교감 선생님이 느꼈을 책임감과 미안함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생각하면 절망감마저 든다. 19일엔 선생님들끼리 만나 교감 선생님 얘기를 하다가 다 같이 눈물을 쏟았단다.
장씨는 "일요일도 교회만 잠깐 갔다 오고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TV만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5일이 지났지만 바다 아래 갇힌 실종자들을 구할 수 없다는 절망감만 더해가면서 좌절과 실의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사고를 내놓고는 자신만 먼저 배를 탈출했다는 선장, 사고 접수 후 대책본부를 꾸리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리고 이후에도 우왕좌왕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정부의 대처와 혼란을 틈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분노할 힘조차 잃고 무기력증에 빠져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에 이어 이번 사고 희생자 대부분도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좌절감이 더해지고 있다.
택시기사 김용석(63)씨는 "이게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기성 세대들의 잘못이 아니겠느냐"며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힘모아 지원하기는커녕 사지로 모는 이 나라와 기성 세대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43)씨는 "사고도 사고지만 초기에 우왕좌왕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건 화를 넘어 어처구니가 없다"며 "주말에 1박2일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취소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무기력증이 단순히 개인적인 증상을 넘어 사회 전체적인 공황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처럼 실의에만 빠져 있는 것은 상황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또 다른 인재를 나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건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인 일임은 분명하지만 무기력에 매몰돼 있다가는 다른 분야에서 제2의 실수, 인재를 불러올 수 있다"며 "이제는 실의를 털어내고 각자의 위치에서 정상적인 일상을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언론도 부정적인 상황을 부각하기보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일과 같은 건설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정부"라며 "정부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집단적 자괴감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태로 기성세대들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죄책감은 이 순간 제일 힘들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봉사활동, 기도 등 조그만 것이라도 유가족 등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실천하면 죄책감도 덜 수 있고, 사회 분위기를 실의에서 치유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