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도산·실업사태 등 경제현안들 “뒷전”올해 국회 국정감사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국정감사」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 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관리설을 둘러싼 여야간 대선 전초전으로 전락, 시종일관 파행과 진통을 거듭하면서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렸다.
16일 현재 회기 마감을 이틀 앞둔 올 국감은 총 2백98개 수감기관에 대해 90% 이상의 감사를 마친 상태에서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실제 올 국감은 여야가 대선일정을 핑계로 통상 20일이던 국감을 18일로 줄이면서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다. 여기다 지난 7일 신한국당이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의 비자금 관리의혹을 폭로하면서 일부 진지하게 진행되던 국정감사마저 여야간 극한 대립형태로 치달았다.
여기다 여론의 흐름도 비자금 정국이라는 메가톤급 사안에 집중되면서 국감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따라서 올해 국감은 대기업 연쇄도산, 금융위기, 실업사태 등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선바람에 밀려 본래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올해가 국감 부활 10년째를 맞는 해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국감 원칙과 기간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올 국감이 예년과 달리 왜곡과 파행으로 치달았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 현안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얻었다.
우선 경제현안에 대해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정부측에 대한 집중적인 추궁과 대안 제시가 이어지면서 나름대로 건설적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재경위와 통상위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기아사태의 장기화에 대해 정부의 정책기조 혼선, 위기관리능력 부족 등 정부의 안일한 대응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성토했으며 부도유예협약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청했다.
여기다 국감 시작과 함께 미국이 우리 자동차 시장에 대해 슈퍼 301조를 발동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며 통상외교분야를 전담할 미 무역대표부(USTR)와 같은 통상대표부 신설 등의 아이디어도 나왔다. 이에 정부도 통상외교 전담기구 설치를 검토키로 했다.
특히 국감기간 동안 기아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의 슈퍼301조가 발동되면서 우리 자동차 업계의 장기적 활로 모색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건교위 국감에서 여야의원들은 경부고속철 부실시공을 집중적으로 질타하면서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과다증액 의혹을 따지면서 국민부담을 줄일 것을 주장했다.
경제문제 못지 않게 보건문제와 노동문제 등 민생현안도 국감의 포인트였다. 농림·해양위, 보건복지위의 국감에서는 최근 알려진 미산 수입쇠고기에서 「O157」균 검출과 관련, 검출경위와 정부의 늑장대응을 따졌다. 특히 그동안 간과돼 온 수입식품 검역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들이 집중 거론됐다.
여기다 노동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노동현안인 정리해고제와 퇴직금우선변제, 근로자 파견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는 국민정서를 대변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정리해고제의 조기시행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회기 중반 터져나온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관리 의혹은 국감전체를 여야간 비자금 공방으로 만들면서 다른 국감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렸다.
국민회의는 재경위의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등의 국감에서 신한국당이 발표한 김총재와 친인척의 예금계좌 등 금융관련 자료를 입수하게 된 경위와 금융실명제 위반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으며 정보위의 안기부 국감에서는 비자금 폭로에 관계기관 등이 개입한 사실 여부를 밝히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법사위 대검찰청 국감에서는 김대중 총재 비자금 수사 착수를 주장하는 신한국당과 이를 저지하는 국민회의의 입장이 맞물려 여야간 심각한 대립양상으로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검찰이 국감에서 수사착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신한국당은 16일 김대중 총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여야 대치국면이 심화, 국감은 사실상 실종해버렸다는 아쉬움을 남겼다.<온종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