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약 두달간 한국 증시를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 규모가 주요 신흥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 비중도 연중 최저로 추락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와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8주간 한국 증시에서 이탈한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52억2,7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아시아 주요 신흥국 중 가장 큰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인도에서 이탈한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32억8,500만 달러였고 태국(17억1,400만 달러)과 대만(13억6,900만 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9억2,400만 달러), 필리핀(6억500만 달러), 베트남(2,300만 달러) 등에서도 외국인 자금은 빠져나갔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만 보면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달 4일부터 이달 15일까지 29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벌였다. 이는 역대 두 번째로 긴 연속 순매도 기록이다. 특히, 외국인의 순매도가 집중된 최근 4주간 한국 증시에서 유출된 외국인 자금만 봐도 38억9,200만 달러에 달했다.
이처럼 연이은 ‘팔자’ 공세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보유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떨어졌다. 지난 15일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코스피 주식 시가총액의 비중은 31.89%로, 작년 말 34.08%보다 2%포인트 이상 낮아져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금융시장 위기 당시의 32.9%나 2012년 남유럽 금융위기 때의 33.6%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날 외국인이 30거래일 만에 순매수를 보이자 한국 증시가 다른 신흥국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도 확산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변수로 남아 있지만, 외국인 자금의 신흥국 이탈 현상만 멈추면 신흥국 내에서 ‘안전지대’로 꼽히는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당장 외국인이 ‘사자’로 돌아섰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외국인 보유 주식 비중이 과거 금융위기 수준보다 낮아진 것은 이례적인 만큼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국면에선 빠른 속도로 회복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신흥국 펀드에서 한국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사적 하단 수준까지 축소된 만큼 글로벌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시기엔 한국 주식에 대한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신흥 아시아 펀드 내에서 한국 주식 비중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로 미리 포트폴리오 조정이 이뤄졌지만 ‘안도 랠리’ 때에는 외국인들이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양호한 한국 주식을 다시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다른 신흥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는 가운데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 조정된 점도 투자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15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렸다. 그러나 S&P는 지난 9일 브라질의 장기 외화 표시 채권 등급을 투기 등급인 ‘BB+’로 한 단계 낮췄다. 금융시장이 불안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터키 등 국가의 신용등급에 대해서도 강등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