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회지도층.’ 지난 6일 현직 국세청장으로는 사상 최초로 구속 수감된 전군표 청장, 부정 편입학으로 돈을 챙기는 유명 사립대학교 총장 부인, 끝까지 혐의를 발뺌하다 구속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지도층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연일 정신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7일 5년 전 국민들에게 약속한 ‘정치중단’을 스스로 뒤엎고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정말 정직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지도자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다”며 자신만이 최적의 후보임을 강조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며 ‘나 아니면 안된다’라는 식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전직 검사가 대기업에 들어간 뒤 전직 동료, 선후배 검사들에게 로비를 실시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지는 등 학계, 정계, 재계, 고위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사회지도층 전반의 기반이 최근 붕괴될 듯한 위기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각 분야에서 참된 리더로서 모범이 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 극대화하려고 혈안이 된 현재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최소한의 금도도 없이 저열할 만큼 자기생존만을 탐닉하는 듯한 이들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맞는 도덕적 의무)’는 무의미하다는 인식이다. 조동숙 현대사회교육원 원장은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이나 윤리의식 부재는 국가경쟁력 악화의 요인이 된다”면서 “특히 대학 전 총장, 전 재단이사장, 모 대학 명예교수, 미술계의 핵심 원로 등까지 포함된 신정아 사건은 한국사회의 먹이사슬 구조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지도층이 기본적인 사회가치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이 업그레이드되기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07년 부패인식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180개국 가운데 43위에 머물렀다. 경제규모 10위권의 국가 치고는 여전히 도덕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평균 4.8점으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001년에 실시된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 결과에서도 스웨덴 6.6점, 일본 4.3점, 미국은 3.6점이었으나 한국은 2.7점에 불과했다. 박종렬 가천대 연구교수는 “사회적 성공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당히 속여도 된다는 ‘집단심리’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지도층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정당당한 ‘경쟁’이라는 사회규범을 무수히 훼손하면서 대다수 시민들에게 가치관의 혼란과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석학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거래 비용을 줄이고 경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뢰(Trust)’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이다. 한편 정정길 울산대 총장은 “미래의 사회지도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일류대학 학생들이 과거 선비정신이나 아카데미즘이 표방하던 고고하고 청렴한 덕성과는 거리가 멀고 약자에 대한 배려나 인간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폭넓은 인간과도 거리가 먼 사람이 돼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매우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